전 세계 어느 나라도 시도하지 않은 실험이 한국에서 시작된다.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현금 대신 블록체인 기반 ‘예금토큰’으로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세계 최초로 추진한다.
재정경제부는 19일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기차 중속 충전시설 구축사업(300억 원 규모)에 국고보조금을 예금토큰으로 집행한다고 밝혔다. 한국환경공단이 오는 5월부터 사업대상자를 공모·선정한 뒤 보조금을 예금토큰 형태로 지급할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다.
블록체인이 국고금을 움직인다
예금토큰은 한국은행이 블록체인 기반 금융기관용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면, 참여 금융기관이 이와 연계된 지급결제 수단인 예금토큰을 발행하는 구조다. 기존 현금 계좌이체 방식과 달리, 토큰 자체에 사용처를 사전 제한하는 조건을 내장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예금토큰은 사용처를 사전 제한할 수 있어 부정 사용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블록체인 기반 실시간 거래 추적으로 정산 기간도 단축되고, 재정 집행 전반의 투명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최초’ 타이틀 뒤의 준비 과정
이번 시범사업이 갑작스러운 실험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이미 지난해(2025년)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예금토큰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하며 기술 검증을 마쳤다. 이를 토대로 국가사업 적용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번 시범사업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와 예금토큰 생태계 형성의 마중물”로 평가하며, “우리나라 지급결제 시스템은 물론 재정 집행 방식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30년까지 국고금 4분의 1 디지털로
정부의 구상은 이번 시범사업에서 멈추지 않는다. 구윤철 부총리는 “2030년까지 국고금 집행의 4분의 1을 디지털화폐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관계부처 협의, 시중은행 간담회 등을 통해 활용 사업을 적극 발굴·확대하겠다”고 예고했다. 110조 원 규모의 국고 보조금을 예금토큰 형태로 지급하는 단계적 확대 계획도 제시됐다.
다만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블록체인 시스템의 운영 안정성, 사이버보안 대응력, 민간 사업자의 시스템 적응 부담 등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가 이번 MOU에 ‘현장 적용성 제고 및 민간사업자 행정부담 경감’을 명시한 것도 이러한 현장 우려를 사전에 반영한 조치로 분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