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국제유가가 국내 실물경제를 흔들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한 달 남짓 만에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서민 가계와 취약계층의 에너지 부담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재정 지원이나 소상공인 지원, 한계기업 지원 등을 하려면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며 “어차피 조기 추경을 해야 할 상황인 것 같다”고 밝혔다. 사실상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면 진지하게 고민할 상황이 됐다”고 언급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발언이다.
고유가·고환율의 이중 압박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서울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949원을 넘어섰고, 경유는 1,971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27일과 비교하면 휘발유는 11%, 경유는 18% 넘게 급등한 수치다.
환율 상황도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급락세로 돌아섰지만, 중동 정세에 따라 언제든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는 고유가와 고환율이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 전반에 파급될 것으로 분석한다.
2월까지 ‘2%대 초반’의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월부터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 채권값 급락으로 시중금리까지 다시 오르면서, 서민과 기업의 이자 부담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국채 발행 없는 추경’ 가능성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최근 반도체 업황 개선과 주식시장 활성화에 따른 거래세 증가 등으로 재원이 늘었다”며 “국채 발행 없이 추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위기 대응이 가능하다는 신호로 시장에서는 해석한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했을 당시, 정부는 54조 9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며 이 가운데 3조 1천억원을 민생·물가 안정 자금으로 배정한 바 있다. 당시 저소득층 긴급생활지원금과 에너지바우처 지원 확대 등이 포함됐다.
석유 최고가격제·선별 지원 병행 검토
정부는 30년 만에 부활하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도 이번 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2주 단위로 상한액을 발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소매가와 도매가 중 어느 단계에 적용할지 다각도로 논의 중이다.
이 대통령은 “유류세를 내리고, 재정 지원은 서민을 중심으로 차등적으로 하는 식으로 정책 수단을 섞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률적 감세보다 선별적 지원을 우선하는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가 급등으로 서민과 취약계층의 타격이 가장 먼저 가시화하는 만큼, 에너지바우처 등을 확대하는 선별적 추경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주무 부처인 기획예산처도 조만간 추경 편성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