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년 연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원화로는 분명히 성장했지만, 달러로 환산하면 거의 늘지 않는 ‘환율의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2025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3만6,855달러로 전년(3만6,745달러)보다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원화 기준으로는 5,241만6,000원으로 4.6% 늘었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이 달러 기준 성장률을 4.3%포인트나 끌어내렸다.
원화 가치 하락이 지운 성장의 흔적
지난해 명목 GDP는 원화 기준으로 2,663조3,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4.2% 증가했다. 그러나 달러 기준으로는 1조8,727억달러로 오히려 0.1% 감소했다.
원화 기준 성장률과 달러 기준 성장률 사이의 4.3%포인트 격차는 순전히 환율 변동에 의한 것이다. 실물 경제는 성장했지만, 기축통화인 달러로 환산하는 순간 그 성과가 사라지는 구조다.
3만달러 진입 12년, 4만달러는 여전히 ‘먼 미래’
한국의 1인당 GNI는 2014년 처음 3만달러를 돌파한 뒤 꾸준히 상승해 2021년 3만8,000달러에 근접했다. 그러나 2022년 급격한 원화 절하로 3만5,000달러대로 주저앉았고, 2023년 3만6,195달러로 반등했지만 이후 증가율은 각각 1.5%, 0.3%로 해마다 낮아졌다.
4만달러 달성 시점을 두고도 시각차가 크다. 정부는 2027년 돌파가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IMF는 2029년까지 미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의 달러 기준 저성장 추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고 분석한다.
제조업·건설업 동반 부진…4분기는 소폭 개선
지난해 연간 실질 GDP 성장률 잠정치는 속보치와 동일한 1.0%로 확정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4.5%, 제조업이 -1.5%를 기록하며 주요 산업이 동반 부진했다. 반면 농림어업(4.7%)과 서비스업(0.6%)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4분기 성장률은 당초 속보치(-0.3%)에서 -0.2%로 소폭 상향 조정됐다. 12월 정부소비(+0.7%포인트), 건설투자(+0.4%포인트), 수출(+0.4%포인트)이 예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나타난 덕분이다. 다만 4분기 전체로는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 기조가 이어졌다.
한편 GDP 디플레이터는 전년보다 3.1% 상승했다. 명목 GDP가 늘었지만 물가 상승이 실질 가치 증가를 일부 잠식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경제 전문가들은 환율 변동성이 진정되지 않는 한 달러 기준 국민소득의 의미 있는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