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제주 찍고 바로 떠난다”… 관광객 수만 늘려준 ‘빈 껍데기 여행’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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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 외국인 관광객 역대 최대 기록
2월 18일 제주국제공항/출처-뉴스1

지난해(2025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893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8.2%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한국 관광의 속사정은 녹록지 않다. 관광객은 늘었지만 관광수지 적자는 107억 달러로 3년 연속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정작 지갑은 덜 열렸다는 뜻이다.

야놀자리서치가 24일 발표한 ‘2025년 한국 인바운드 및 아웃바운드 관광 실적 분석’ 보고서는 한국 관광 산업의 이 같은 ‘양적 성장, 질적 퇴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관광객 1인당 지출액은 1,155달러로 2019년보다 오히려 줄었고, 한국인의 해외여행 지출은 더 빠르게 늘어 관광수지 불균형이 심화됐다.

크루즈 타고 왔다 가는 ‘스쳐가는 관광’의 함정

2025년 한국 외국인 관광객 역대 최대 기록
2025년 외국인 관광객1893만명 기록/출처-연합뉴스

관광객은 늘었는데 왜 돈은 덜 쓸까? 핵심 원인은 관광객 구성의 변화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중 크루즈 관광객이 급증했다. 크루즈 여행은 배 안에서 숙박하고 식사하기 때문에 육상 체류 시간이 짧다. 부산이나 제주에 잠깐 내려 면세점에 들르고 다시 배로 돌아가는 ‘당일치기 관광’이 대부분이다.

보고서는 “체류 시간이 짧아 소비 규모가 작은 크루즈 관광객이 급증했지만, 대량 쇼핑 위주의 면세점 매출이 급감했다”고 지적했다. 과거 중국 관광객들이 명품 쇼핑으로 면세점 매출을 견인하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단기 방문객이 늘면서 ‘깊이 있는 소비’가 줄어든 것이다. 관광객 수만 늘렸지, 그들이 한국에서 머무르며 경험하고 소비할 콘텐츠는 부족했다는 반증이다.

명동 대신 병원 찾는 관광객들… 의료관광 2조원 시대

암울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의료관광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의료관광 소비액은 2조796억 원으로 2019년 대비 5.3배 급증했다. 성형외과, 피부과, 건강검진 등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크게 늘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 관광이 ‘쇼핑과 K-팝’을 넘어 전문 관광으로 다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의료관광객은 일반 관광객보다 체류 기간이 길고 지출 규모도 크다. 수술이나 시술 후 회복 기간 동안 호텔에 머물며 관광도 겸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의료관광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안착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관광수입(218억9,000만 달러)에서 의료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2019년보다 관광수입이 5.5% 늘었지만, 관광객 수 증가폭(8.2%)에는 미치지 못한다. 결국 ‘많이 오지만 적게 쓰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중국발 변수… ‘일본 대신 한국’ 수요 잡을까

2025년 한국 외국인 관광객 역대 최대 기록
서울의 한 화장품 매장/출처-연합뉴스

한국 관광 산업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중국과 일본 간 외교 갈등이 불거지면서 중국 정부가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본으로 향하던 중국 관광객 일부가 한국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제기됐다.

홍석원 야놀자리서치 수석연구원은 “일본 이탈 수요의 한국 유입 효과는 춘제 연휴가 포함된 올해(2026년) 1분기 실적에서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출 규모가 큰 중국인 수요 유입이 확인되면 낮아진 1인당 지출액을 끌어올려 관광수지 적자 개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글로벌 관광 시장에서 중국 관광객의 움직임은 결정적 변수다. 태국 관광청은 2025년 중국인 관광객이 33% 감소하면서 태국 관광 산업이 7%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관광객 유치가 아시아 관광 시장의 승패를 가르는 열쇠인 셈이다.

2025년 한국 외국인 관광객 역대 최대 기록
한복 체험하는 외국인 관광객/출처-연합뉴스

하지만 외부 변수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보고서는 “인바운드 관광의 수익성을 높이는 질적 전환이 동반되지 않으면 만성적 적자와 구조적 불균형이 굳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히 관광객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에서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은 경험을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아르헨티나는 2025년 관광수지 적자가 40~100억 달러에 달하며 최근 10년 중 최악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환율 요인 외에도 관광 인프라 경쟁력 부족을 구조적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진짜 경쟁력 있는 관광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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