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월. 한국 기업들이 ‘부정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간이다. 2022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한 번도 기준선 100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3월, 드디어 이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4일 발표한 3월 BSI 전망치는 102.7을 기록했다. 100을 넘어선 것은 2022년 3월(102.1) 이후 정확히 4년 만이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고금리 환경 속에서 버텨온 기업들이 비로소 ‘희망’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이번 반등의 주역은 명확하다. 반도체와 자동차, 한국 경제의 양대 수출 엔진이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산업통상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반도체 수출액은 205억4천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02.7% 급증했다. 2개월 연속 200억 달러를 넘긴 것은 신기록이다. 자동차 수출도 60억7천만 달러로 21.7% 증가하며 역대 1월 중 2위 실적을 올렸다.
제조업, 2년 만에 ‘긍정’ 선언
특히 제조업의 반등세가 눈에 띈다. 3월 제조업 BSI는 105.9로 전월(88.1)보다 무려 17.8포인트 뛰었다. 2024년 3월 이후 2년 만에 기준선을 넘어섰고, 수치 자체로는 2021년 5월(108.6) 이후 4년 10개월 만의 최고치다.
업종별로 보면 10개 세부 업종 중 6개가 기준선을 넘었고, 3개는 기준선에 걸쳤다. 부정 전망을 보인 업종은 ‘식음료 및 담배'(94.7) 단 하나뿐이다. 반도체와 전력설비가 포함된 ‘일반·정밀기계 및 장비’ 업종은 128.6으로 제조업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동차 및 기타 운송장비’도 103.6으로 기준선을 넘어섰다.
흥미로운 것은 ‘섬유·의복 및 가죽·신발’ 업종이다. 전월 대비 41포인트나 급등한 114.3을 기록했는데, 신학기를 앞두고 의류와 신발 수요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한경협은 “2월 설 연휴로 조업일수가 줄어든 기저효과도 작용했다”며 “주요 수출 품목의 실적 개선이 기업 심리 회복을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비제조업과 내수는 여전히 ‘빨간불’
하지만 모든 지표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비제조업 BSI는 99.4로 전달 대비 0.1포인트 오히려 하락하며 여전히 기준선에 못 미쳤다. 7개 세부 업종 중 도소매(111.8)와 여가·숙박·외식(108.3)만 호조 전망을 보였을 뿐, 나머지는 부진했다.
부문별 지표는 더 뚜렷한 명암을 보인다. 수출 지표는 100으로 2024년 6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내수(98.5), 투자(96.4), 고용(94.7)은 모두 기준선 아래에 머물렀다. 특히 고용 지표가 94.7에 그친 것은 수출 회복이 아직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재고(103)와 자금사정(93.5)을 제외한 모든 부문의 전망치가 전월 대비 상승했지만, 여전히 기준선을 넘지 못한 항목이 많다.
“단기 반등에 그치지 않으려면…”
전문가들은 이번 회복세가 지속 가능한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본부장은 “경기침체 지속으로 장기간 부진했던 기업 심리가 호전된 것은 매우 유의미한 변화”라면서도 “이번 개선이 단기 반등에 그치지 않으려면 국회와 정부가 규제 개선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4년 만의 반등은 한국 경제에 중요한 전환점이다. 문제는 이 모멘텀을 어떻게 내수와 고용으로 확산시키느냐다. 수출 회복이 서비스업과 소비로 전이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