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동토층 녹으며 깨어나는 고대 병원균
식물 병원성 세균 활동 재개 확인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재현되나

몇만 년간 얼어붙어 있던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잠들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해빙과 함께 깨어나는 잠든 위험
4일 극지연구소 김덕규·김민철·이영미 박사 연구팀이 발표한 알래스카 북서부 수어드 반도 카운실 지역의 토양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영구동토층 해빙 시 휴면 상태의 병원균들이 되살아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90일간의 실험을 통해 동토가 녹으면서 세균의 개체 수가 증가하고 군집 구조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동토층에서 발견된 세균 슈도모나스 균주들이 감자 무름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져 우려를 자아냈다.
이 세균들은 저온에서는 휴면 상태로 있다가 동토가 녹는 환경에서 활성화되면서 감염성을 띠고 개체 수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류를 위협해 온 전염병의 역사
이러한 발견은 인류의 과거 전염병 대재앙을 떠올리게 한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에서는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질병에 의해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서기 165년에서 180년 사이에는 ‘안토니누스 역병’으로 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541년부터 750년까지 비잔틴 제국을 강타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콘스탄티노플에서만 하루 1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현대 과학의 도전
신형철 극지연구소장은 “북극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깨어날 미생물은 분명 걱정거리이지만, 그 위험성은 아직 과학적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잠재적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북극 현장과 실험실에서 식물 병원균의 휴면과 활성을 지속해서 추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극지연구소의 ‘온난화로 인한 극지 서식환경 변화와 생물 적응진화’와 한국연구재단의 ‘기후변화에 의한 북극 동토 생태계 생지화학적 변화 이해’ 연구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독성학과 환경안전 분야 저명 학술지 ‘Ecotoxicology and Environmental Safety’에 지난달 게재됐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저명한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 교수는 저서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염병은 인류 역사상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 이제 기후변화로 인해 녹아내리는 북극 영구동토층에서 또 다른 위험이 깨어나고 있다.
과학계는 이러한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발 빠른 연구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