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퇴근 차량을 줄이면 석유가 절약된다. 단순해 보이는 이 원리가 지금 국가 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고유가와 에너지 수급 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재택근무를 에너지 절감 수단으로 공식 검토하기 시작했다. 차량 부제, 공영주차장 이용 제한에 이은 차세대 대응책이다.
대통령이 꺼낸 카드, ‘재택근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월 6일 국무회의에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재택근무를 선제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출퇴근 시간대 혼잡 완화와 에너지 소비 감축을 동시에 노린 조치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국가 자원안보 위기 단계가 현재의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되면 재택근무 권고 등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내부에서는 공공기관에서 먼저 시행한 뒤 민간으로 확산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민간의 경우 강제가 아닌 권고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숫자로 본 절감 효과…차량 9만 대 주행분
재택근무의 에너지 절감 효과는 이미 수치로 검증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추정 방식을 2025년 국내 임금근로자 2,241만 명에 적용하면, 하루 최대 1만 7,300배럴의 석유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하루 5,755배럴, 월 기준으로는 약 17만 3,000배럴에 달한다. 이는 차량 9만 대의 하루 주행분에 맞먹는 양이다.
글로벌 기준도 뒷받침한다. IEA는 주 1일 재택근무만으로도 교통 부문 석유 소비를 연간 1% 줄이고, 전 세계 기준 이산화탄소 약 2,400만 톤을 감축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미국 141개 도시 분석에서도 재택근무 비중이 1%포인트 오를 때마다 1인당 일평균 교통 배출이 약 1.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안소린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재택근무는 1인당 연간 약 29.94㎞의 이동 거리를 줄이며, 이를 기반으로 한 국내 연간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은 약 7,810톤(온실가스상당량)이다. 한양대 오규식 교수팀은 원격근무센터 도입 시 수도권에서만 하루 911톤, 연간 23만 5,056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집단 재택’이 핵심…정교한 설계가 변수
재택근무 시 가정 내 전력과 난방 사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비대면 시기 실제 데이터를 보면, 가정 부문 에너지 소비는 전년 대비 0.3% 증가에 그친 반면 수송 부문은 10.6%, 상업 부문은 3.2% 감소했다. 국내 전기 소비 구조에서 주택용 비중은 15%인 데 반해 산업·상업용은 55%를 넘기 때문에, 재택근무로 인한 감축 효과가 가정용 증가분을 충분히 상회한다.
영국 국가통계청과 캐나다 천연자원부는 건물 전체나 일부를 폐쇄하는 ‘집단 재택근무’를 병행할 때 에너지 절감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개인이 집에서 일하는 것을 넘어, 사무실 운영 자체를 줄이는 설계가 핵심이라는 의미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재택근무는 교통 부문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검증된 수단이지만, 효과는 제도화 수준과 운영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며 “통근 거리, 교통수단, 건물 운영 방식까지 포함한 정밀한 정책 설계가 핵심 변수”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