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한 만큼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포괄임금’이라는 이름 아래 수십 년간 수많은 노동자가 초과근무를 해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공짜 노동’이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정부가 마침내 이 불합리한 관행에 칼을 빼 들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4월 8일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을 발표하고, 다음 날인 9일부터 전국 사업장에 시행에 들어갔다. 포괄임금 관련 공식 지침이 발표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포괄임금이란 무엇인가…왜 문제인가
포괄임금제란 실제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임금을 사전에 정하고,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지급하는 임금 산정 방식이다. 겉으로는 편리해 보이지만, 실상은 초과 근무를 해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구조로 악용되어 왔다.
특히 많은 사업장에서 활용해 온 ‘고정OT 약정’이 대표적인 오남용 사례다.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사전에 정액으로 약정한 뒤, 실제 초과 근무 시간이 약정을 초과해도 차액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이 횡행해 왔다.
지침 핵심 내용…’고정OT 차액’ 안 주면 임금체불
이번 지침은 세 가지 핵심 원칙을 명시했다. 첫째, 사용자는 임금대장과 임금명세서에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반드시 구분해 기재해야 한다. 기본급과 수당을 뭉뚱그려 지급하는 정액급제, 연장·야간·휴일 수당을 구분하지 않는 정액수당제는 모두 불허된다.
둘째, 고정OT를 약정한 경우에도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법정수당이 약정 금액보다 많다면 차액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임금체불로 간주해 엄정 처벌한다. 셋째, 사용자는 모든 개별 근로자의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포함한 근로시간을 빠짐없이 기록·관리해야 한다.
감독 체계 강화…익명신고센터도 운영
정부는 지침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포괄임금·고정OT 오·남용 익명신고센터’를 운영한다. 익명으로 신고된 사업장은 포괄임금 오·남용 의심사업장으로 등록되어 수시 감독 및 하반기 기획감독 대상에 포함된다.
이미 2026년 2월 26일부터 포괄임금 오·남용 기획감독이 실시 중이며, 임금대장·임금명세서 작성·교부 점검을 중심으로 한 ‘기초노동질서 기획감독’도 추가로 착수할 계획이다. 제도 개선 의지가 있는 사업장에는 ‘일터혁신 상생 컨설팅’과 민간 HR 플랫폼 지원을 연계해 합리적 임금체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번 지침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시절 노사 양측의 반발로 끝내 발표되지 못했던 시도를 9년 만에 현실화한 것이다. 2025년 12월 30일 노사정 협의체인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이 관행 개선에 합의하면서 물꼬가 트였으며,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이 노사 합의 사항을 반영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포괄임금 약정을 체결했다는 이유만으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불공정한 관행이 현장에 여전히 남아 있다”며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사용자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