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끝나면 무기 수요는 줄어들까. 적어도 중동에선 그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나증권은 9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종전되더라도 중동의 방산 수요는 오히려 확장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전쟁이 중동 각국의 방위 체계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국가 핵심 인프라 방호 실패, 단일 공급선 의존에 따른 조달 차질, 요격 시스템의 구조적 공백이 동시에 노출됐다. 이 전쟁은 중동 국가들에게 군비 재편의 강력한 명분을 제공했다.
종전 이후 오히려 커지는 중동의 군비 지출
하나증권 채운샘 연구원은 “종전 이후 중동의 방산 수요는 군비 지출 확대, 무기 수요 증가, 비미국 공급선 병행 가능성 확대라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중동 국가들은 군사기지뿐 아니라 국가 핵심 인프라를 방호하기 위한 다층 방공 구조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고고도를 담당하는 중층 방공체계에 더해, 저가 요격체계와 하층 방공망을 포함하는 입체적 방어망 구성이 과제로 부상했다. 채 연구원은 “이번 전쟁에서 드러난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의 군비 지출은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경희대 최영준 교수도 “전쟁으로 불안정성이 커지면 실제 전투가 없더라도 각국이 군비 지출을 확대하게 된다”며 “한국 방산 기업들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의존 구조의 균열…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
중동은 전통적으로 무기 수입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며, 그 중심엔 미국이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특정 공급국에 대한 조달 편중이 물량 확보 시점과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현실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줬다.
채 연구원은 “향후에는 무기 성능뿐만 아니라 조달 속도, 공급 안정성, 역내 현지 생산 확대의 중요성도 점차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중심 구조가 유지되더라도, 빠른 납기와 현지 생산·기술협력이 가능한 비미국 공급선을 병행하려는 수요가 충분히 형성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바로 이 지점이 K-방산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다. 채 연구원은 “한국 방산기업들이 이와 같은 조건들에 부합한다”고 명시했다. UAE와 이미 공동 연구개발·현지 생산 협력을 진행 중인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업별 수혜 시나리오…LIG부터 KAI까지
수혜 기업 지형도도 구체화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집트 K9 기수주 물량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상무기 수출 확대를 추진 중이다. 현대로템은 이라크 전차 사업 등 수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으며, 한국항공우주(KAI)는 중동 국가들을 대상으로 KF-21 수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LIG D&A는 UAE·사우디·이라크 기수주 사업에 더해 중층 방공체계 수요 확대와 요격미사일 재고 보강 필요성을 감안하면 신규 국가 수주 및 추가 물량 확보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평가다. 하나증권은 지난 3월 LIG넥스원의 목표주가를 기존 56만2,000원에서 71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천궁-2의 중동 내 입증 효과와 수요 확대를 선반영했다.
종전 이후 중동이 방위력 재건에 나설 때, 속도와 신뢰를 동시에 갖춘 공급자를 찾게 될 것이다. K-방산은 지금 그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포지셔닝에 들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