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 바꾸려는 대란 속
대기업들까지 불안에 움직였다

“어차피 피해 규모도 모른다는데, 무조건 교체하는 수밖에.”
국내 1위 통신사 SK텔레콤에서 발생한 가입자 유심(USIM) 정보 탈취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불안으로 번지고 있다.
가입자만 2500만 명에 달하는 대형 통신사에서 해킹이 발생했지만 열흘 가까이 피해 규모조차 공개되지 않으면서 혼란은 커지고 있다.
유심 무료 교체 방침을 내린 SK텔레콤의 매장과 온라인 예약 시스템 모두 마비 수준이다.
매장마다 긴 줄, 품절 사태…터지는 불만

2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부터 전국 2600여 곳의 T월드 매장에서는 유심 무료 교체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면서 일부 매장은 수시간 만에 재고가 동났다.
SK텔레콤이 이날 준비한 유심 물량은 100만 개, 다음 달에는 500만 개를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당분간 ‘유심 품귀’ 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개통된 T월드 예약 페이지는 접속자 폭주로 종일 지연됐다. 게다가 유심 교체를 빙자한 스미싱 문자까지 퍼지면서, 고령층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피해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대기업까지 유심 교체 권고…커지는 파장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주요 대기업들도 직원들에게 유심 교체를 권고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이 모두 “SK텔레콤 사용자는 즉시 유심을 교체하라”는 공지를 냈다. 특히 IT 기업들은 내부망 보안에 민감한 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물리적 유심 교체만으로는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SK텔레콤은 소프트웨어 초기화 방식 등 다른 보안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피해 경로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불안이 현실화된 곳은 통신시장이다. 26일 하루 동안 SK텔레콤 가입자 1665명이 다른 통신사로 번호이동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신형 갤럭시S25를 사실상 ‘공짜폰’에 가깝게 풀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 심리를 잡지 못하면 가입자 이탈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불안만 증폭시키는 지금 같은 상황이 가장 위험하다”며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명확한 사고 조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혼란을 키운 것은 해커가 아니라, 늦장 대응과 불투명한 정보였다는 점에서 통신 보안 체계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