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공포는 이미 오래됐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벤처투자자는 그 방식이 직종별로 전혀 다르다고 경고했다. 화이트칼라는 기계에 밀리는 게 아니라 ‘AI를 쓰는 동료’에게 밀리고, 블루칼라는 기업이 공정 자체를 바꾸면서 인간 노동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킨드레드벤처스 설립자 겸 대표 파트너 스티브 장은 2026년 5월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스타트업 신 포럼’ 대담에서 이 같은 전망을 내놨다. 포브스가 2023년과 2024년 연속으로 세계 50대 벤처캐피털 투자자로 선정한 그는, 우버·코인베이스·퍼플렉시티 등 100여 개 기업에 14년간 투자해온 인물이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AI 위기론’이 아니라, 직군별로 재편 방식이 다르다는 구조적 분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화이트칼라, 기계가 아니라 ‘동료’에게 밀린다
스티브 장은 지식 노동자의 변화를 ‘displacement(밀려남)’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AI가 당장 화이트칼라 직업을 통째로 없애는 게 아니라,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재편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AI 도구를 갖춘 3인 개발팀이 과거 80명 조직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메타의 디자이너·엔지니어 등 8천 명 정리해고를 사례로 들었다. 이를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기술 현실을 반영한 매우 전략적이고 의도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IMF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소득국 기준으로 전체 일자리의 약 60%가 AI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 중 약 30%는 AI가 업무의 상당 부분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석된다. OECD 역시 문서 작성·코드 작성·정보 검색 등 화이트칼라 업무의 20~30% 수준을 AI가 대체 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에 기계가 낸 결과를 검증·조정하고 책임지는 능력이 노동시장의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블루칼라, ‘선택’이 아닌 ‘대체’의 구조
반면 제조·육체 노동 분야에 대해서는 더 강한 경고가 나왔다. 스티브 장은 블루칼라 영역의 변화를 ‘replacement(대체)’로 규정하며, 이는 근로자가 AI 도구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구조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로봇과 물리적 AI를 도입해 공정 자체를 바꾸면서 인간 노동이 통째로 교체된다는 것이다.
자동창고 시스템, 자율주행 트럭, 건설 로봇 등 AI와 로봇 공학의 결합은 이미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다만 업계 전문가들은 “낮은 숙련·위험·반복 업무는 축소되겠지만, 데이터센터 전력·냉방·로봇 유지보수 등 고숙련 기술직 수요는 오히려 급증하는 과도기가 병행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AI 데이터센터(AIDC) 붐’으로 인해 초고압 전력 설계 기술자나 냉각 설비 엔지니어는 한국·미국 공통으로 ‘부르는 게 값’인 수준이라는 현장 증언도 잇따른다.
재교육 없인 ‘사회적 충격’…스타트업엔 “흥(興)의 에너지”
스티브 장은 이런 구조적 변화에 국가와 산업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상당한 사회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교육(reskilling)과 역량 강화(upskilling)를 핵심 대응책으로 강조하며, 이를 복지가 아닌 산업·경쟁력 정책으로 재인식해야 한다는 시각이 국제기구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AI의 장기 전망에 대해서는 낙관론을 폈다. 그는 교육과 헬스케어를 AI가 가장 먼저 큰 변화를 일으킬 분야로 꼽으며 “화성에 가기 전에 암을 치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 기업의 AI 독점에 대해서는 “과점·독점에 가까운 구조는 소비자와 사회, 시장 경쟁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픈소스 AI 모델의 확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창업에 대해서는 냉정한 시각을 유지했다. “마라톤이 아니라 죽음의 타임라인을 향한 단거리 질주”라고 표현하면서도, 한국식 ‘한(恨)’의 무조건적 인내가 아니라 팀원들과 창의적으로 협력하며 변화를 즐기는 ‘흥(興)’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