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88개국서 팔리는데”… 정작 한국선 주인 대접 못 받는 ‘K-푸드’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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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볶음면 상표권 등록 추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출처-연합뉴스

누적 판매량 80억 개, 전 세계 88개국에 수출되는 ‘불닭볶음면’이 정작 한국에서는 상표권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삼양식품이 이달 중 영문 명칭 ‘Buldak’의 국내 상표권 출원에 나서면서, K-푸드 대표 브랜드의 지적재산권 공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19일 “불닭 브랜드 영문명 상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달 중 지식재산처에 출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삼양식품은 88개국에서 약 500건의 상표를 등록했거나 심사 중이지만, 27개국에서 모방 제품과의 분쟁이 진행 중이다.

2008년 판결이 만든 ‘보통명사의 역설’

중국과 사우디 등지에서 팔리는 모방 제품/출처-연합뉴스

국문 명칭 ‘불닭’이 국내에서 상표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삼양식품이 ‘불닭’ 상표를 등록했지만, 2000년대 들어 ‘홍초불닭’ 등 외식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2008년 특허법원은 “‘불닭’이라는 명칭은 이미 보통명사처럼 널리 사용되고 있어 상표로서 식별력을 잃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인해 삼양식품은 자사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불닭’이라는 명칭을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였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에서 상표가 등록되지 않으면 해외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국내 등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짝퉁 천국된 해외 시장, ‘Boodak’까지 등장

불닭볶음면 모방 제품/출처-연합뉴스

불닭볶음면의 인기가 급상승한 2020년대부터 해외 모방 제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에서는 중문 명칭 ‘火鷄麵'(불닭면)을 사용한 제품과 캐릭터 ‘호치’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 제품이 유통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서는 국문 ‘불닭볶음면’ 문구와 함께 영문으로 ‘Buldak’이라고 표기한 위조품이 판매 중이다.

더 교묘한 사례도 있다. 최근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Boodak’이라는 모방 브랜드가 포착됐다. 제품에는 ‘Samyang'(삼양)과 유사한 ‘Sayning’이라는 이름까지 표기돼 있었다. 심지어 북한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방품이 중국에서 유통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삼양식품은 경고장 발송, 분쟁조정 신청, 지식재산청 신고, 압류신청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전 세계로 확산되는 모방품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소비자 인식이 곧 상표권”… 법률 전문가도 힘 실어

삼양식품 신문광고/출처-연합뉴스

전문가들은 ‘Buldak’이 해외에서 이미 삼양식품의 고유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조은영 엘리스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전 특허심판원 심판장)는 “상표 판단의 핵심은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소비자 인식의 실질에 있다”며 “시장 인식에 대한 법적 평가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소비자들이 ‘Buldak’을 특정 제품의 고유명사로 인식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완성된 브랜드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다.

삼양식품은 영문 명칭 ‘Buldak’을 비롯해 캐릭터·포장 상표 출원을 늘리는 추세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Buldak’ 상표가 등록되면 해외에서 상표권 침해에 대응하는 데 지금보다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25년 1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해외에서 K-브랜드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삼양식품은 최근 신문 광고를 통해 “우리 정부가 보증하는 ‘고유 브랜드’라는 날개는 불닭을 모방제품, 유사 제품과 명확히 구분해 시장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하며, 상표권 확보를 K-푸드의 수출 경쟁력 강화와 연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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