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밀어올린 낸드 호황기
D램만큼 뜨거운 ‘HBF 전쟁’
삼성·SK, 메모리 주도권 다툼

그동안 공급 과잉으로 주춤하던 낸드플래시 시장이 AI 열풍을 타고 급격히 살아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뜻밖의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단순히 회복세가 아닌, ‘슈퍼사이클’급의 흐름이다.
특히 AI 기반 서버와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대용량 저장장치 수요가 폭증하면서, 낸드 제품 가격은 이달 들어 일부 최대 50%까지 올랐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황금기가 다시 시작됐다”며 이례적인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낸드, ‘제2의 D램’으로 급부상

미국 샌디스크가 이번 달 낸드 계약 단가를 50% 가까이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시장 전반에 가격 인상 흐름이 번지고 있다. 고용량 SSD 수요 증가로 공급이 빠르게 조여들자 가격 역시 가파르게 반등한 것이다.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모바일·SSD용으로 널리 사용되는 512Gb 트리플레벨셀(TLC) 낸드의 현물 가격은 전주 대비 14.2% 상승한 5.51달러를 기록했다.
이 같은 현물가 상승은 당장의 수요 폭증으로 물량 확보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생성형 AI를 넘어 추론용 AI로 시장이 확장되면서, 고성능 메모리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서버 확대에 따라 SSD 수요가 치솟고 있고, 그로 인해 낸드 재고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며 “HBM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낸드 단가가 오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SK, 고대역폭 낸드로 전면전

낸드 시장의 이같은 상승세는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년 낸드 및 D램 물량이 이미 ‘완판’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샌디스크 CEO 데이비드 게클러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고객사들이 2027년 물량까지 문의하고 있다”며 공급 부족이 최소 2026년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양사는 전략을 고성능 낸드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 낸드플래시(HBF) 제품 개발에 착수하며, 중국 시안 공장의 176단(V7) 공정을 286단(V9) 공정으로 전환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고대역폭 낸드는 AI 학습 및 추론 과정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차세대 제품으로, 성능과 수익성을 모두 겨냥한 포석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2025 OCP 글로벌 서밋’에서 ‘AIN(AI-낸드) 패밀리’라는 새 전략을 공개했다.
앞서 8월에는 샌디스크와 고대역폭 낸드(HBF) 표준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글로벌 협력 체제도 강화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AI 시대에는 빠른 연산만큼 데이터를 어떻게 저장하고 처리하느냐가 핵심”이라며, “고대역폭 낸드는 일부 영역에서 HBM을 대체할 만큼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HBM 그늘 넘보는 낸드의 질주

한편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역은 단연 D램과 HBM이었다. 하지만 AI 중심의 데이터 운용 환경이 정교해질수록, 고성능 낸드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낸드는 저장과 접근 속도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만큼 기술 진입장벽도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이제는 삼성과 SK의 ‘다음 먹거리’가 D램이 아닌 낸드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AI 인프라 구축의 핵심이 저장장치로 옮겨가면서, 낸드 기반 제품의 성능과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기업이 장기적인 반도체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