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수장이 동시에 ‘하반기 위기’를 경고했다. 글로벌 디스플레이 업계가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과 중동 전쟁 장기화라는 두 가지 악재에 동시에 노출되면서 원가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은 12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6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정기총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올해 하반기는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전쟁이 발발 2주를 맞은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유가 급등에 따른 전자 제품 원자재 비용 상승 우려에 더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 충격이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 등 부품사로까지 확산하는 양상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 세트 수요 직격
핵심 문제는 메모리 가격 상승이 부품 원가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최종 소비자 수요 자체를 끌어내린다는 데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메모리값 인상 여파로 제품 출하를 줄이기로 하면서 패널 수요도 동반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장은 “메모리 제조업체들은 실적이 좋을 것 같지만, 메모리를 사용하는 고객사들은 굉장히 힘들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앞서 그가 올해 초 ‘CES 2026’에서도 반도체 가격 상승에 따른 세트 수요 둔화를 올해 사업 최대 변수로 지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쟁 장기화’ 시나리오가 더 무서운 이유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현재의 충격보다 전쟁 장기화 시나리오다. 이 사장은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원가 부담이 굉장히 커질 것”이라며,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가 혁신과 협력사 간 공조가 사실상 유일한 대응책이라는 뜻이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영향이 아직은 없지만, 길어질 경우 나쁜 쪽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예의주시하며 관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메모리 가격 때문에 세트 가격도 올라가고 있는데, 메모리 수급 상황에 맞춰 대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디스플레이 특별법’으로 돌파구 모색
이러한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는 ‘기술혁신·제도혁신·제조 AI 혁신’을 올해 비전으로 제시하고, ‘디스플레이 특별법’ 제정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중국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이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법 제정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을 마중물 삼아 한국 디스플레이가 다시 한번 힘차게 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중동 전쟁 장기화와 메모리발 수요 둔화가 동시에 현실화할 경우, 하반기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실적 악화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