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위기 속 적대적 경쟁자들이
손을 맞잡는 이례적 결정
미국 시장 공략 위한 협력 강화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결국 경쟁자들을 한배에 태웠다.” 국내 철강 산업의 두 거인이 생존을 위해 동맹을 선언했다.
치열한 경쟁자로 알려진 두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함께 승부수를 던지며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 관세 압박’ 속 손잡은 철강 강자들
지난 21일,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차그룹은 ‘철강 및 이차전지 분야의 상호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국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 관계였던 두 기업이 미국 제철소 합작 투자라는 파격적인 협력을 선언한 것이다.
글로벌 공급 과잉, 통상 압력, 환경 전환 도전 등 복합적인 위기에 처한 국내 철강업계가 이례적인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연간 270만 톤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이 제철소에 지분을 투자해 일정 물량을 직접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50여년 관계가 맺은 새로운 협력의 장

이러한 협력은 반세기에 걸친 양 측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화한 결과다. 포스코그룹과 현대차그룹은 1973년부터 50여 년간 철강 공급사와 고객사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현대차그룹이 자체 자동차 강판 생산을 시작하면서 포스코가 열연코일 공급을 중단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두 기업은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전용선 공유, 포스코케미칼과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 1고로 개수 작업 협력 등을 통해 경쟁 속 협력의 구도를 발전시켜 왔다.
양 그룹은 미국 제철소 합작 외에도 탄소 저감 철강 생산, 이차전지 소재 분야 협력까지 강화하기로 했다.

포스코그룹의 이차전지 소재 경쟁력과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 기술력을 결합해 공급망 구축과 차세대 소재 개발에서 시너지를 모색할 계획이다.
철강업계 위기의 그림자… 생존을 위한 ‘오월동주’
이번 합작은 총 58억 달러(약 8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제철소 투자금 절반을 외부에서 충당해야 하는 현대제철과 트럼프 대통령의 25% 철강 관세를 피해 북미 생산 거점이 필요한 포스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철강 산업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방증”이라며 “공급 과잉, 트럼프발 통상 압력, 탄소중립 전환이라는 거대한 외부 변화 앞에서 결국 국내 1·2위 기업이 힘을 합쳐 파고를 넘어야 한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철강업계는 최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관세청이 발표한 ‘4월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철강 수출은 지난 1~20일 기준 24억 달러로 전년 대비 8.7% 감소했다.
여기에 더해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의 작년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보다 38.5%, 60.6% 감소했으며, 증권가에서는 현대제철이 올해 1분기에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한다.
장상식 원장은 “국내외에서 업계 1∼2위 기업 간 합병이나 특정 사업 분야에서의 협력 사례는 있었겠지만, 이번처럼 회사의 거의 모든 미래를 담보하는 전 영역에서 협력하기로 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위기 속에서 피어난 이 협력이 한국 철강산업의 새로운 활로가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가 포스코를 매입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