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유가가 9일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국내 건설·건자재 업계가 원가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중동 산유국들의 핵심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아스팔트·시멘트·레미콘 등 주요 건설 자재의 생산과 운송 원가가 동반 급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화랑 부연구위원은 “장비 투입 비중이 높은 건설 현장 특성상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의 중동 에너지 의존도는 원유 70.7%, 액화천연가스 20.4%에 달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물량은 세계 해상 석유 수송량의 27%를 차지한다.
국제유가 10% 오르면 시멘트 0.21%↑… 연쇄 타격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건산연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석회·아스팔트 등 비금속 광물은 0.33%, 시멘트·레미콘 등 콘크리트 제품은 0.21%, 건설용 골재·석재는 0.19%, 철근은 0.12% 생산 비용이 각각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것은 유가 급등 시나리오다. 국제유가가 60% 상승하면 건축물 공사비는 1.5%, 일반 토목시설 공사비는 3%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이달 말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레미콘·시멘트 업계 “사면초가”… 유연탄까지 덩달아 상승
최근 경유 가격 급등으로 레미콘 업계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부 레미콘 제조사들이 운송 사업자의 유류비를 전액 부담하는 구조라 경유값 상승이 수익성을 직접 갉아먹는다. 한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지난해 원가 구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수도권 가격은 인하됐지만 운반비는 인상됐다”며 “건설 경기 침체로 출하량마저 급감해 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렸다”고 토로했다.
시멘트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시멘트 생산 원가의 25%를 차지하는 유연탄 가격이 유가 상승 시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 시멘트사 관계자는 “친환경 설비 투자, 전력비 상승, 안전운임제 시행에 따른 원가 부담이 이미 큰 상황”이라며 “유연탄 가격까지 오르면 업계 시름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공 발주 유찰 가능성… 주택 공급 차질 우려
2022년 러·우 전쟁 여파로 약 3년 만에 자재비와 인건비를 포함한 건설 공사비가 약 30%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동 갈등 장기화 시 비슷한 수준의 공사비 급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중동 갈등이 길어지면 러·우 전쟁 때처럼 공사비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중동 사태에 따른 유가 상승은 건설공사비의 꾸준한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공공 발주라도 계획된 공사비 범위를 넘어설 경우 유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자재비·인건비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큰 상황에서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더해지면, 업계 수익성 악화는 물론 주택 공급 차질까지 빚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