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다주택자의 기존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는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오는 4월 17일부터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를 보유한 다주택자는 기존 주담대 만기를 연장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를 통해 다주택자 대출 만기연장 관행을 공개 비판한 지 약 한 달 반 만에 나온 것이다. 2022년 이후 다주택자 신규대출은 금지됐지만, 기존 대출의 만기연장은 관행적으로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책은 기존 규제의 빈틈을 겨냥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조치로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약 1만2000가구 물량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인 호가를 낮추는 이른바 ‘메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연내 만기 2조7000억원…1만2000가구 시장 압박
금융위에 따르면 규제 대상인 다주택자 만기 일시상환 주담대는 전 금융권을 합산해 총 4조1000억원, 약 1만7000가구에 달한다. 이 중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은 2조7000억원, 약 1만2000가구 규모다.
규제 대상은 소재지와 무관하게 2채 이상을 보유한 개인 다주택자와 개인·법인 임대사업자다. 단, 임차인이 있는 경우에는 임대차 계약 종료일까지 만기연장이 허용되는 예외가 적용된다.
정부는 1만2000가구가 절대적으로 큰 규모는 아니더라도, 시장에 즉시 풀릴 수 있는 매물이라는 점에서 가격 안정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소수 매물이 전체 시장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부동산 거래의 특성을 감안한 판단이다.
무주택자 갭투자 일시 허용…매물 소화 속도 높인다
정부는 다주택자 매물이 시장에서 신속히 소화될 수 있도록 무주택자에 한해 갭투자를 연말까지 한시 허용했다. 무주택자가 임차인이 있는 다주택자 매물을 매수할 경우, 토지거래허가제상 실거주 의무를 임대차 계약 종료일까지 유예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토허제상으로는 매수자가 허가 취득 후 4개월 이내에 해당 주택에 실거주해야 한다. 이 규정을 그대로 두면 임대차 계약 종료가 4개월 미만 남은 주택만 거래 대상이 돼 매물 출회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전요섭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면 실거주 의무 때문에 다주택자 매도가 임대차 계약이 끝날 때까지 미뤄진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월 발표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재시행 방안에서도 같은 취지의 실거주 유예 조항이 포함된 바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공급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갭투자 일시 허용으로 임차인 주거 불안정이 단기적으로는 개선될 수 있지만,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도는 구조에서 전월세 상승 압력은 피하기 어렵다”며 “다세대·연립·오피스텔 등 주거용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단기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기성 1주택자’ 규제 공식 예고…기준 마련이 관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에 관한 대출규제 방안을 추후 발표하겠다”며 “부동산 투기는 돈이 안 된다는 원칙을 시장에 확실히 각인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2월 말 X를 통해 직접 언급한 ‘투기·투자용 1주택자’ 규제를 공식 예고한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비거주 1주택자 규제가 다주택자 규제보다 시장에 미칠 파장이 훨씬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거주 1주택자의 정의 방식에 따라 규제 대상이 광범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비거주 1주택의 경우 처한 조건과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촘촘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다주택자 매물 소화를 위해 실수요자 대출규제 완화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진형 교수는 “대출규제로 인해 실수요자가 매물을 소화할 구매력이 있는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요섭 금융정책국장은 “이 시점에 대출규제를 풀면 과거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완화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