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들어 48%나 급등하며 전 세계 증시를 압도하던 코스피가 중동 전쟁 발발과 함께 하루 만에 7.24% 폭락하며 세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연초 이후 승승장구하던 한국 증시가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리스크에 가장 취약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일 코스피는 452.22포인트(7.24%) 급락한 5,791.91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2024년 8월 5일(-8.77%) 이후 1년 7개월 만의 최대 낙폭으로, 사상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코스닥도 4.62% 하락하며 전 세계 낙폭 순위 3위를 차지했다. 시가총액은 4거래일 만에 5,000조원 아래로 추락했다.
한국 증시의 충격이 더욱 두드러진 이유는 최근까지의 성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2월 말까지 코스피는 48.17% 상승하며 세계 주요 지수 중 1위를 기록했다. 2위 코스닥(28.88%)을 포함해 3위 대만(22.27%), 일본(16.91%)을 크게 앞질렀다. 미국 S&P(0.49%), 나스닥(-2.47%)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세계가 주목한 한국의 취약성
같은 날 글로벌 증시 낙폭을 비교하면 한국의 민감도가 유독 높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스(-5.75%),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4.58%), 스페인(-4.58%)이 상위권에 올랐지만, 한국의 7.24% 낙폭은 압도적이었다.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중국 심천(-3.24%), 일본(-3.06%), 홍콩(-1.12%) 등은 상대적으로 낙폭이 작았다.
업종별로는 수출 중심 산업의 타격이 컸다. 3일부터 4일 오전까지 자동차 업종은 15.71% 급락해 최악의 낙폭을 기록했다. IT(-13.56%), 증권(-13.55%), 건설(-12.72%), 반도체(-10.93%) 등이 뒤를 이었다. 개별 종목으로는 현대차(-11.72%), 기아(-11.29%), SK하이닉스(-11.50%), 삼성전자(-9.88%)가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였다.
투자자별 거래 현황도 극명했다. 외국인은 5조 1,731억원을 순매도하며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이탈을 기록했다. 기관도 8,895억원을 매도했다. 반면 개인은 5조 8,006억원을 순매수하며 하단을 지키려 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VKOSPI는 16.37% 급등한 62.98을 기록하며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높은 원유 의존도가 부른 악몽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로 높은 중동 원유 의존도와 수출 중심 산업구조를 지목한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원유 도입량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이란이 해협 봉쇄를 시사하면서 유가 급등과 공급망 차질 우려가 동시에 불거진 것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했고 중동 전면전 우려와 유가 폭등 여파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초로 대내외 불안이 확대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조선 군사 호위 등 공급망 안정화 조치에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따른 변동성이 고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올해 다른 지역보다 유독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코스피 급락에 대한 타격감은 상당하다”며 “주가가 많이 올랐던 업종부터 우선 매도하는 무차별한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현재 국내 증시는 단순히 ‘주가’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국면에 일시적으로 들어선 영향도 있다”며 기술적 조정 측면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엇갈린 전망
향후 전망을 놓고는 의견이 갈린다. 낙관론 측은 중동 전쟁이 단기에 종료될 경우 빠른 회복 가능성을 제시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정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던 차에 전쟁이 터지며 조정이 왔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장주 실적이 견고할 만큼 전쟁이 단기에 끝난다면 조정도 빠르게 마무리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우려론도 만만치 않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유가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반도체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와 실물 경제 모두 악화될 수 있다”며 “중동 전쟁으로 석유 가격이 올라 기업들의 지출이 늘어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나증권 글로벌투자분석실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1~2주 단기 충돌 시 빠른 회복이 가능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 봉쇄되고 무력 충돌이 확대될 경우 큰 폭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중동 불안이 30일을 초과할 경우 경기 침체 확률이 75%에 달하며, 최악의 경우 코스피가 20% 대비가 필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반도체 등 핵심 업종의 펀더멘털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21만원에서 26만원으로, SK하이닉스를 11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투자증권도 삼성전자 27만원, SK하이닉스 150만원을 제시하며 올해 반도체 실적 개선에 확신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이번 급락을 중장기 매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