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 지형이 ‘안정 지향’으로 뚜렷하게 재편되고 있다. 한때 60세 아래로 내려갔던 CEO 평균 연령은 다시 60세 선으로 돌아왔고, 내부 출신 비중은 최근 4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올해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500대 기업 중 370개사 CEO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CEO 수는 2023년 545명에서 올해 510명으로 3년 새 35명(6.4%) 감소했다. 이 가운데 내부 출신 CEO 비중은 84.5%(431명)로 집계됐다.
위기의 시대, ‘아는 사람’이 CEO 된다
올해 새로 선임된 CEO 58명 중 47명이 내부 승진형 인사로 분류됐다. 신규 선임의 약 81%가 외부 영입이 아닌 내부 발탁으로 채워진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꼽는다.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 AI 전환 압력이 겹치는 상황에서 오너 입장에서는 사업·조직·문화를 두루 아는 내부 인사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CEO의 법적 책임 부담이 커진 점도 외부 영입보다 내부 신뢰 인사를 선호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기획·전략형 CEO 급부상, 재무·영업은 뒷걸음
직능별 출신 구성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확인된다. 기획·전략 출신 CEO는 2023년 194명(35.6%)에서 올해 217명(42.6%)으로 3년 새 23명 증가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재무 출신은 같은 기간 19.4%에서 18.8%로, 영업·마케팅 출신은 10.3%에서 8.2%로 각각 낮아졌다.
기업지배구조 연구자들은 기획·전략 출신 CEO의 부상을 지주사 중심 지배구조 강화와 연결 짓는다. 그룹 컨트롤타워에서 전체 전략을 조율한 인물을 계열사 CEO로 내려보내 그룹 전략을 현장에서 실행하게 하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기술형 CEO도 증가세를 보였다. R&D 출신은 32명에서 35명으로, 생산·제조 출신은 27명에서 29명으로 늘었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기술 난도가 높은 산업에서 현장을 이해하는 리더십 수요가 꾸준히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평균 연령 60세 복귀·여성 CEO 2%대, ‘다양성 숙제’ 여전
CEO 평균 연령은 2023년 59.1세에서 지난해 59.8세를 거쳐 올해 60.0세로 상승했다. 한때 50대 후반까지 내려갔던 평균치가 다시 60세 선으로 회귀한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경험 많은 베테랑을 선호하는 기류와 장기 근속 후 CEO에 오르는 국내 특유의 커리어 구조가 맞물린 결과다.
여성 CEO는 3년간 12명에 머물다 올해 14명으로 소폭 늘었다. 그러나 전체 510명 중 비중은 2%대에 불과하다. S&P 500의 여성 CEO 비중이 6~10% 수준인 점과 비교하면 현격한 격차다. ESG·지배구조를 중시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리더십 다양성을 핵심 평가 항목으로 삼는 추세를 감안하면, 한국 대기업의 CEO 구성이 국제 기준에서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