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까지 내줄게, 제발 물건만 달라”….주문 폭주에 즐거운 비명 지르는 ‘한국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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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력기기 업체 수출 실적
HD현대일렉트릭 미국 앨라배마 법인 전경/출처-HD현대일렉트릭, 뉴스1

관세를 고객이 낸다. 수입업체가 먼저 나서서 18~20%에 달하는 관세 부담을 가격에 포함해 달라고 요청한다. 글로벌 무역에서 보기 드문 ‘공급자 천국’ 시대가 열렸다. 주인공은 한국 전력기기 업체들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국내 전력기기 ‘빅3’는 최근 미국 수출 시 발생하는 고율 관세를 발주처가 직접 보전해 주는 이례적 계약 구조로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으로 초고압 변압기를 수출하면 상호관세 15%에 철강 파생상품 관세 3~5%가 더해져 최대 20%의 관세가 붙지만, 이 부담을 구매자가 떠안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증설과 노후 전력망 교체가 겹치면서 초고압 변압기 수요는 폭증했지만, 숙련 인력 양성에 10년 가까이 걸리는 특성상 공급은 제한적이다. 여기에 중국 업체 배제 정책까지 더해지며 한국 제품은 ‘없어서 못 파는’ 상황에 진입했다. K-반도체에 이어 K-전력기기까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대 최고 실적 동시 달성…수주잔고만 27조

효성중공업 초고압변압기/출처-효성중공업, 뉴스1

2025년 전력기기 3사는 모두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매출 4조795억원, 영업이익 9953억원을 기록했고, 효성중공업은 매출 5조9685억원, 영업이익 7470억원을 달성했다. LS일렉트릭도 매출 4조원대, 영업이익 4000억원대의 안정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수주잔고는 더욱 압도적이다. 효성중공업 11조9000억원, HD현대일렉트릭 10조~11조원, LS일렉트릭 5조150억원을 합치면 27조원을 넘어선다. 최소 5년치 일감을 이미 확보한 셈이다. 특히 LS일렉트릭의 수주잔고는 전년 대비 47.5% 급증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6일 콘퍼런스콜에서 “관세 보전분이 실제 수익으로 환입되고 있으며, 향후 프로젝트에서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5년 하반기 미국 765킬로볼트(kV)급 초고압 송전망 신규 건설 계획이 확정되며 관련 변압기 발주가 본격화된 점도 수주 증가를 이끌었다.

북미 넘어 일본·중동까지…수출 전선 확대

일렉스 코리아 2026 전시장/출처-연합뉴스

전력기기 호황은 북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일렉스 코리아 2026’에는 일본 간사이 전력, 중동 아랍 컨트랙터스 등 글로벌 주요 발주처들이 직접 방한해 국내 생산 현장을 점검했다. 일본은 전력망 현대화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동·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 지역은 전력 인프라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전력 수요가 2025년 3.3%, 2026년 3.7%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한다. 배전기기 시장 규모는 2026년 약 259조원에 달하며, 연평균 5.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전력기기 수출액도 최근 4년간 20% 가까이 증가했다.

“구조적 성장 국면”…2034년까지 시장 2배 확대 전망

HD현대일렉트릭 초고압차단기/출처-HD현대일렉트릭, 뉴스1

증권가는 이번 호황을 단순 경기 사이클이 아닌 ‘구조적 성장’으로 분석한다. AI 데이터센터용 전력 수요 급증, 노후 설비 교체 주기, 에너지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2034년까지 고전압 변압기 시장이 2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2030년까지 초고압과 배전을 연계한 대규모 물량 공급을 협의 중”이며 “우량 고객을 선별 수주하는 ‘슬롯 예약’ 전략을 통해 높은 이익률을 2026년 이후에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수주를 골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AI, 전력망 교체, 에너지 전환이라는 세 축이 겹친 구조적 호황인 만큼 전성시대가 쉽게 꺾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증권 김광식 연구원은 “배전 시장은 기간 산업인 송전 시장보다 규모가 2~3배 크고 지속성도 높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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