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업서 AI까지, 바다서 찾은 미래
김재철 동원 명예회장, 90대 에세이 출간
“파도 피하려면 파도에 맞서라”

“아니다 싶은 것은 용기 있게 포기하라.” 원양어선에서 시작해 글로벌 기업을 일군 한 산업화 1세대가 남긴 반전 메시지다.
서울대 진학을 포기하고 바다를 선택한 그가 90대에 들어선 지금, 데이터의 바다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후원하고 있다.
동원그룹은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이 경영 에세이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문학동네)을 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부제는 ‘도전과 모험을 앞둔 당신에게’로, 책에는 김 명예회장의 어린 시절부터 기업 경영 중 겪은 위기와 성공 스토리가 담겨 있다.

서울대 대신 바다를 선택한 청년의 도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젊은이들이 바다로 나가야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의 이 한마디가 김재철 명예회장의 인생을 바꿨다.
공부를 잘해 서울대 진학이 가능했지만, 그는 국립부산수산대학교 어로학과를 선택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대학 시절 원양어업 실습을 통해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접한 그는 바다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했다. 무급 인턴으로 시작해 현장 경험과 어학, 수산 연구까지 병행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1969년, 자본금 1,000만 원으로 동원산업(현 동원그룹)을 창업했고, 불과 3~4년 만에 6척의 선단을 보유한 원양 업계의 주목받는 기업가로 성장했다.
“도전이 습관이 됐을 뿐, 남들은 열정이라 불렀다”
김 명예회장은 수산업에서 시작해 식품, 포장재, 물류, 금융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성공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카메라 사업, 모피 제조업, 조미 오징어 사업, 삐삐 사업 등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도전이 도전을 낳고 습관이 됐을 뿐이다. 그 습관을 남들은 열정이라고 불렀다”라고 그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의 경영 철학은 단순히 실패해도 끝까지 도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포기하라는 것이다.
이미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고 미적대면 더 중요한 시간을 잃는다는 교훈을 후배들에게 전했다.
김 명예회장은 “파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파도에 맞서는 것뿐”이라며 ‘도전’과 ‘열정’, ‘호기심’ 등 세 가지 키워드를 자신의 삶의 핵심 가치로 제시한다.

“향상심(向上心)”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해 온 그의 자세가 동원그룹의 성장 동력이 됐다.
바다에서 AI까지, 데이터 대항해시대 리더 양성
90대에 접어든 현재도 김 명예회장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인재 육성에 열정을 쏟고 있다.
2020년에는 인공지능(AI) 분야 인재 육성과 연구개발(R&D)을 위해 카이스트에 사재 500억 원을 기부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AI 교육과 연구를 위해 44억 원의 추가 발전기금을 약정했다고 지난 1월 밝혔다. 이로써 김 명예회장이 KAIST에 기부한 금액은 총 544억 원에 달한다.
KAIST는 기부금 중 483억 원을 투입해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지상 8층·지하 1층, 연면적 1만 8천㎡ 규모의 교육연구동을 건설할 예정이다.
2028년 2월 완공을 목표로 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춘 50명의 교수진을 갖추게 된다.
“젊은 시절엔 세계의 푸른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찾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데이터의 바다에 새로운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김 명예회장은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데이터 대항해시대 리더로 도약할 수 있는 글로벌 핵심 인재를 양성해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주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이 책은 원양어업부터 AI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도전을 멈춘 적이 없는 ‘영원한 청년 김재철’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에세이”라며 “거장의 묵직한 메시지가 늘 새로운 모험을 꿈꾸는 세상의 모든 드리머(Dreamer)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전했다.
원양어선 항해사 출신으로 동원그룹을 일군 김 명예회장은 한국무역협회장, 여수 엑스포 유치위원장 등을 맡아 국가 위상을 높인 공로로 1991년 금탑산업훈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미래를 향한 도전 정신을 잃지 않는 김재철 명예회장. 그가 서울대 대신 바다를 선택한 지 56년, 그의 새로운 도전은 이제 데이터의 바다에서 미래의 씨앗을 틔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