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내 연료 가격이 이란 전쟁 여파로 2주 만에 20% 안팎 폭등하며 경제 전반에 인플레이션 도미노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충격이 단순한 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운송·농업·유통·항공 등 산업 전반을 강타하는 복합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에너지부(EIA)에 따르면 3월 10일 기준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50달러로 2주 사이 19% 상승했다. 디젤은 같은 기간 28% 급등해 갤런당 4.86달러를 기록했다. 이란이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에 보복해 세계 원유 운송의 핵심 해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한 데 따른 결과다.
EIA는 이번에 급등한 휘발유·디젤 가격이 최소 내년 중반까지는 전쟁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유가(WTI)는 한국시간 3월 9일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가 이후 80달러 후반대로 되돌아섰다.
디젤 한 방울이 물가 전체를 흔든다
연료 가격 급등의 파장은 가장 먼저 트럭 운송 업계를 강타했다. 운송사들은 디젤 비용이 오르면 고객에게 유류할증료를 청구해 손실을 메우는 구조로 운영된다. 트럭 운송 업체 피터스 브라더스의 브라이언 위너 대표는 “유류할증료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최근 3년간 업계 수익성이 크게 나빠진 만큼 최소한의 보호 장치인 할증료마저 없으면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피터스 브라더스는 연간 100만 갤런의 연료를 소비한다.
농업 분야도 직간접적인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 일리노이대 게리 슈니트키 교수(농업경영학)는 “디젤 연료가 농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직접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아도 농기계 가동과 작물 운송에 필수적인 만큼 여타 비용으로의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운송비와 관련 제품 가격이 함께 오르면서 결국 연쇄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항공·유통·자동차까지 전방위 충격
항공유는 전쟁 직전 배럴당 99달러에서 현재 225달러로 140% 폭등했다. 항공유가 항공사 운영 비용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항공 요금 인상 압력이 정면으로 가해지는 구조다.
유통 업계는 물류비 상승과 소비 위축이라는 이중 타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시메온 것먼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넓은 농촌 지역에 점포망이 퍼진 유통 체인이 이번 유가 상승의 타격을 크게 받을 수 있다”며 “조만간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지출이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드·GM 등 완성차 업체들도 트럭과 SUV 수요 감소 우려로 이번 주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다.
저소득층 직격…트럼프엔 정치적 ‘딜레마’
시장 조사 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의 스테파니 발데즈 디렉터는 “저소득층 가구는 소득 대비 연료비 지출 비중이 불균형하게 높고, 상승 비용을 감당할 재무적 완충 장치가 가장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의 최종 타격이 경제적 약자에게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도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 인하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현재 연료 가격은 트럼프 1·2기를 통틀어 역대 최고 수준이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클레이턴 시글 선임연구원은 “현재 분쟁이 에너지 가격에 미칠 영향은 중동 지역 원유 공급 차질 규모에 달려 있다”며 일시적 충격에 그칠지 장기 공급 차질로 이어질지가 핵심 변수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