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가계빚이 또다시 역대 최대를 경신하며 2000조원 문턱을 두드리고 있다. 은행 창구는 규제로 막혔지만, 저축은행·농협·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에서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탓이다.
한국은행이 19일 발표한 ‘2026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93조 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1979조 1000억원)보다 14조원 늘어나며 2002년 4분기 통계 공표 이래 최대 기록을 세웠다.
2024년 2분기 이후 8개 분기 연속 증가라는 점에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입)과 ‘빚투'(대출로 투자)의 흐름이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행 3년 만에 감소, 2금융은 두 배 ‘폭발’
겉으로 드러난 수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은행과 비은행의 극명한 엇갈림이다. 예금은행 가계대출(1009조 6000억원)은 전 분기보다 2000억원 줄어 2023년 1분기 이후 3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
반면 상호금융·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325조원)은 한 분기 새 8조 2000억원이 불어났다. 특히 비은행권 주택관련대출이 10조 6000억원 급증하며 전 분기(+6조 5000억원)의 1.6배를 넘어섰다.
이혜영 한국은행 금융통계팀장은 “예금은행은 가계부채 관리 기조로 주택관련대출 증가폭이 축소됐지만, 비은행기관에서 금융당국의 관리 강화 기조 이전 대출 수요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2025년 6월 발표된 ‘6·27 대책’이 은행권 규제는 즉시 작동시켰으나, 2금융권 차단에는 시차가 생기면서 차주들이 대출을 당겨 쓴 ‘풍선효과’가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빚투’도 재점화… 증권사 신용공여 역대 세 번째 급증
주택 관련 대출 외에 ‘빚투’ 지표도 심상치 않다. 기타금융기관의 가계대출(531조 2000억원)이 5조원 늘었는데, 이 중 증권사 등 기타금융중개회사의 신용공여가 4조 8000억원 급증했다.
금융투자협회 집계에 따르면 1분기 증권사 신용공여 증가분은 7조 3000억원으로, 전 분기(+3조 3000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이자 증가폭 기준 역대 세 번째 수준이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주식시장 레버리지 자금이 다시 확대되면서 시장 변동성 확대 시 반대매매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 전세 시장도 부채 증가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월 대비 0.82% 올라 매매가 상승률(0.55%)을 웃돌았다. 5월 둘째 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13.7로 2021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GDP 대비 비율 하락 전망, 그래도 ‘안심’은 이르다
다소 완화적인 신호도 있다. 이혜영 팀장은 “1분기 가계신용이 전년 동기 대비 3.5% 늘었고, 같은 기간 실질 GDP 속보치가 3.6% 증가했다”며 “명목 GDP 기준으로 가계부채 비율은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비율의 소폭 하락이 곧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BIS(국제결제은행) 통계에서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주요국 중 상위권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으며, 절대 수준 자체가 높기 때문에 ‘관리 가능한 속도’와 ‘위험한 수준’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팀장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이전 매물 출회로 주택 매매 거래가 증가한 만큼, 주담대가 일시적으로 확대될 수 있어 유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이 농협중앙회·새마을금고 등을 대상으로 추가 관리 방안을 발표한 만큼, 비은행권 대출 급증세가 계속될지가 2분기 최대 변수로 떠오른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