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정세 악화로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900원을 돌파하며 2000원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름값 부담이 커지자 전기차 대리점에 구매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의 대규모 가격 인하와 고유가라는 두 변수가 맞물리면서, 전기차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는 양상이다.
배럴당 125달러 충격…국내 유가 ‘널뛰기’
미국·이란 직접 충돌 여파로 국제유가는 지난 9일 한때 배럴당 125달러까지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전을 시사하자 80달러대로 급락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국내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3월 8~9일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는 리터당 1890~1918원, 경유는 1912~1943원까지 치솟았다. 중동 사태 발발(2월 28일) 이후 9일간 휘발유는 13~15%, 경유는 21~24% 급등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 제도(캡제) 시행을 결정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담합 조사를 주문했다.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S-OIL·HD현대오일뱅크)도 경유 리터당 최대 150원, 휘발유 20원 공급가 인하에 나섰다. 국내 석유 비축량은 208일분(세계 6위)으로 단기 수급 위기는 없으나, 소비자의 체감 부담은 이미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테슬라 940만 원·기아 EV6 300만 원…가격 인하 ‘도미노’
고유가 충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이 소비자의 관심을 전동화 모델로 끌어당기고 있다. 테슬라코리아는 지난해 말 주요 차종을 최대 940만 원 인하했고, 볼보코리아도 소형 전기 SUV EX30 가격을 최대 761만 원 낮췄다.
국내 업체도 뒤처지지 않는다. 현대차는 이달 계약 후 4월 내 출고 고객을 대상으로 아이오닉 5·6·9, 코나 일렉트릭 구매 시 100만 원 추가 할인을 제공 중이다. 기아는 지난달 EV5 롱레인지를 280만 원, EV6를 300만 원 각각 인하했다.
유지비 격차도 구매 결정에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휘발유가 리터당 2000원에 근접한 현 상황에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월평균 연료비 격차는 10만 원 이상으로 벌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20만 원 이상의 차이로, 차량 구매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기아, 月 1만4488대 역대 최고…전기차 시장 ‘변곡점’ 왔나
시장 지표는 이미 변화를 가리키고 있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3만 5766대로 전년 동기 대비 170% 급증했다. 기아는 사상 처음으로 월간 1만 대를 돌파하며 1만 4488대를 기록,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업계는 현장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하 정책과 고유가가 맞물리면서 대리점 현장에서 전기차 문의가 다소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또 다른 관계자는 \”승용차 구매는 장기간 비교·검토가 일반적이어서 즉각적인 판매 폭증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신중론을 덧붙였다.
장기 전망은 녹록지 않다. 한국신용평가는 전기차 수요 둔화가 지속될 경우 2027년까지 신규 설비 증설이 배터리 3사의 재무 부담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2026년 이후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관세 인상이 현실화되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반사이익 확대 가능성도 열려 있다.
고유가와 가격 인하에 더해 일부 소비자가 충전 환경 개선을 체감하는 지금, 전기차 전환의 속도는 시장 예상을 앞지를 수 있다. 연료비 부담에 지친 소비자들이 지갑을 어떻게 열지, 2026년 봄 자동차 시장의 향방이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