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전기도 눈치 보며 써야 하나”… 정부가 내놓은 불안한 보고서

AI는 전기도 삼켜버리고 있다
한국 전력망에 경고등이 켜졌다

“즐기는 건 좋은데 GPU가 녹고 있다. 이미지 생성을 조금만 자제해달라.”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챗GPT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엔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그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급증으로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이대로 가다간 전력망이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전력은 부족한데 데이터센터는 늘어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7년까지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신청량은 7343메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공급 가능한 전력은 4718메가와트에 그쳐, 약 36%의 전력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부족한 전력은 원전 2~3기의 생산량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데이터센터는 하루 24시간 전기를 끊임없이 사용하는 시설이다. 보통 한 곳에서만 6000가구가 쓰는 전력만큼을 소비한다.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자체의 수가 늘고, 한 곳이 사용하는 전기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처럼 늘어난 수요를 송전할 인프라는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망’ 사업은 원래 2019년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인허가 지연으로 2026년으로 늦춰졌다.

전국 31개 송전 사업 중 26곳이 비슷한 이유로 멈춰 있는 상태다. 전기를 생산하고도 실어나르지 못하는, 비효율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유럽과 남미에서 정전 공포가 현실이 됐다

지난 4월,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단 5초 만에 15기가와트가 증발하며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ATM과 병원, 지하철이 모두 멈췄고, 시민들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장사진을 이뤘다. 일부 지역은 하루 이상 전력 복구가 지연됐다.

남미 칠레에서도 거의 전국의 90%가 정전 사태를 겪었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던 환자 3명이 숨졌고, 전기가 끊긴 놀이기구에서 사람들이 고공에 매달린 채 구조되기도 했다.

재생에너지 의존, 전압 제어 실패, 이상기후까지 복합적인 원인이 전력망의 한계를 드러냈다.

가트너는 2027년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의 40%가 전력 부족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성능 GPU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전력 인프라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AI 산업의 확장은 이제 기술 발전뿐 아니라 에너지 수급과 송전망 확보라는 물리적 조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력 인프라의 중요성은 AI 시대에 더욱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