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단순 기업 이슈를 넘어 한미 통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미국 워싱턴에서 나왔다. 미국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와 쿠팡이 “공생 관계”임을 강조하며 건설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미국 무역법 301조 발동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양국 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태미 오버비 DGA그룹 파트너(전 미 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아시아정책연구소(NBR) 세미나에서 “한국에는 쿠팡이 필요하고, 쿠팡에는 한국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쿠팡 매출의 약 90%가 한국에서 발생하고, 3,300만 명의 한국 국민이 이용하며, 많은 중소기업이 쿠팡을 통해 5,100만 명 소비자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버비 전 부회장은 “한국 정부가 한 기업에 대해 이렇게 빠르고 전면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쿠팡 사태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이 이례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의회와 행정부, 언론, 국민들이 이제 쿠팡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그 인식은 ‘한국 정부가 쿠팡을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는 것 같다’는 방향으로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의장 국회 불출석, “전략적 실수”
오버비 전 부회장은 자신이 컨설팅하는 기업 중 한 곳이 쿠팡이라고 밝힌 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국회 출석 거부를 “실수”로 평가했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이 국민적 논란 발생 시 국회에 출석해 사과했던 것처럼 “김 의장이 국회에 가서 사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의장은 이날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지난해 말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육성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한국 국회 출석 요구는 계속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301조 발동 가능성 높다”… 관세 재인상 우려
나이절 코리 아시아정책연구소 비상근 펠로는 쿠팡 사태가 “단순히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더 광범위한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와 미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정부에 디지털 비관세 장벽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조치가 없을 경우 무역법 301조 발동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 무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동에 관세 부과 등으로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한다. 실제로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의 ‘부당하고 차별적인 행동’을 주장하며 트럼프 행정부에 301조 조사를 청원한 상태다.
코리 연구원은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사업 분야와 무관하게 한국 공정거래위원회(KFTC)로부터의 대우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논의 중인 온라인플랫폼법까지 입법되면 공정위의 권한이 더 막강해져 이런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U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 더 높다”
코리 연구원은 지난달 13일 미 하원 청문회에 전문가로 참석했을 때 “EU(유럽연합)보다 한국 관련 질문을 더 많이 받은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와 의회가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EU 이상으로 중대한 통상 이슈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미국 기업들은 오랫동안 제기돼 온 우려에 대해 이제야 해결할 기회가 왔다고 보고 있다”며 한미 무역 협상 과정에서 디지털 분야 비관세 장벽 문제 해결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앞서 23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를 7시간여 조사했다. 미국 의회가 미국 기업 임직원을 상대로 직접 증언을 청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쿠팡 사태가 한미 통상 협상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