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4년 10월 가상자산사업자(VASP) 갱신을 신청한 빗썸이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로 심사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법적으로는 불수리 사유가 없지만, 금융당국이 “현재 상황을 감안해 신중히 판단하겠다”며 수리 시점을 사실상 무기한 보류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자 만료일(2024년 12월)은 이미 지났지만, 심사 기간 중에는 영업을 계속할 수 있어 빗썸은 당분간 ‘갱신 대기’ 상태로 거래소를 운영하게 됐다.
12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은 빗썸에 대한 현장검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결과 확인 전에 갱신 수리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빗썸의 갱신 심사가 빨리 끝날 것 같지 않다”고 못 박았다. 이찬진 금감원장도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FIU가 최종 판단할 부분”이라면서도 “현재 상황까지 감안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법은 ‘수리’, 시장은 ‘불안’… 규제 공백의 아이러니
정작 문제는 당국이 이번 사태를 법적으로 반영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불수리 요건은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 미획득 ▲실명계좌 미사용 ▲범죄수익은닉규제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고 5년 미경과 등 세 가지로 한정돼 있다. 비트코인 오지급처럼 시장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사고가 발생해도, 이들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수리를 거부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사태 점검은 기본적으로 특금법보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위반 여부에 집중돼 있다”며 “법상 명시된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당국이 수리하지 않으면 법 위반이 된다”고 설명했다.
과거 정부가 가상화폐를 정식 금융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금세탁 방지에만 초점을 맞춰 규제 틀을 짜면서 발생한 공백이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법적 한계로 불수리를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빗썸이 시장신뢰 회복 대책을 충분히 마련할 때까지 갱신 절차를 장기간 미뤄둘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IPO 일정도 차질… “모든 계획 재검토 불가피”
빗썸은 2026년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2025년 8월 신설 법인 ‘빗썸에이’를 출범시키고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는 등 상장 준비에 속도를 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임직원 복지포인트를 85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축소하고, 지난 2월 5일에는 마이너스 수수료 이벤트까지 도입하며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 약세로 인한 거래대금 감소에 이어 대규모 오지급 사고까지 터지면서 상장 일정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대금 부진 속에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던 시점에 사고가 발생한 만큼, 향후 사업의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향후 VASP 갱신 심사에서 시스템 안정성 평가 기준을 대폭 상향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업계 전체의 규제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급물살’… 금융회사 수준 규제 도입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시장을 종합 관리할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감원장은 “현재 가상자산이용자법에 내부통제 기준이나 위험관리 기준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자율 운영에 한계가 있다”며 금융회사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구체적으로는 보유 잔액과 장부 대조를 현재 하루 1회에서 실시간 연동으로 의무화하고, 시장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금융위·FIU·금감원은 모든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해 전수점검을 실시해 보유·운영 현황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점검할 계획이며, 위법 사항 발견 시 즉시 현장검사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빗썸에 대한 현장검사 후속조치는 2026년 상반기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