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업황이 질주하는 동안 한국 제조업 전반은 여전히 찬바람을 맞고 있다. 중동 사태가 촉발한 공급망 불안과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이 산업 저변을 짓누르며, 체감 경기는 무려 5년 가까이 회복의 기준선을 밑돌고 있다.
19분기 연속 기준치 미달…수출기업 20p ‘급락’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제조기업 2,27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6년 2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76으로 집계됐다. 이는 1분기 전망치 77에서 1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2021년 3분기 이후 19분기 연속으로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BSI는 100 이상이면 이전 분기보다 경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전체 지수 하락폭은 크지 않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균열이 선명하다. 내수기업 지수는 78로 전분기보다 4포인트 상승한 반면, 수출기업 지수는 90에서 70으로 무려 20포인트 급락하며 대내외 온도차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개의 제조업’…반도체 118 vs 정유·석유화학 56
14개 조사 업종 중 기준치(100)를 넘은 곳은 반도체(118)와 화장품(103) 단 두 곳뿐이었다. 반도체는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 흐름을 타고 2분기 연속 긍정적 전망이 우세했다. 화장품은 전분기 대비 18포인트 하락했지만 기준치를 겨우 지켜냈다.
반면 중동산 원유·가스 수급과 직결된 정유·석유화학은 BSI 56으로 전체 업종 중 가장 낮았고, 하락폭(-21p)도 가장 컸다. 철강(64)과 섬유·의류(63)도 부정적 전망이 다수를 차지하며 전통 제조업의 어려움이 수치로 드러났다. 시장에서는 고부가가치 섹터로의 집중화가 뚜렷해지면서 중간층 산업의 구조적 약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기업 10곳 중 3곳 이상 “투자 축소·지연”…원자재 비용이 최대 리스크
올해 상반기 실적에 영향을 미칠 리스크로는 응답 기업의 70.2%가 ‘원자재·에너지 비용 상승’을 꼽았다. 이어 ‘지정학 리스크'(29.8%), ‘환율 변동성 확대'(27.6%), ‘소비회복 둔화'(19.1%) 순이었다.
투자 계획 이행 현황에서도 불안 심리가 읽힌다. 응답 기업의 61.1%는 계획대로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35.1%는 당초 계획보다 투자를 축소하거나 지연하고 있다고 답했다. 투자 위축의 배경으로는 ‘수요 등 시장 상황 악화'(26.9%)가 가장 많이 꼽혔고, ‘생산비용 상승'(24.4%), ‘관세·전쟁 등 통상환경 변화'(23.9%), ‘자금조달 여건 악화'(19.9%)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수요 부진이 기업 심리를 악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투자 연기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로 진단한다.
강민재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반도체 호조에도 통상 불확실성과 중동 사태에 따른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이 제조업 전반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정부 비상 경제 대응 체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실효성 있는 대응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