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용인 일대에서 소형 아파트 가격이 중대형을 앞지르는 ‘가격 역전’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의 지원 조건인 ‘9억 원 이하·전용 85㎡ 이하’ 기준이 시장의 절대적 가격 분기점으로 자리잡은 영향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수원 영통구 ‘광교 더포레스트’ 전용 74㎡는 지난달 18일 9억 원에 거래됐다. 반면 같은 단지 전용 101㎡는 3월 말 8억 9500만 원에 계약되며 더 넓은 면적이 오히려 더 낮은 가격에 팔렸다.
이 같은 현상은 특정 단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원 영통구 ‘매탄위브하늘채’ 전용 72㎡는 지난달 24일 7억 1000만 원에 거래돼 같은 달 전용 84㎡(7억 원) 거래가를 웃돌았다. 용인 수지구 ‘내대지마을 건영캐스빌’에서도 전용 84㎡(8억 3000만 원)가 전용 110㎡(8억 1500만 원)보다 높게 팔렸다.
30대가 시장 흔든다…수원 매수자의 절반이 30대
가격 역전 현상의 핵심 동력은 30대 실수요층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3월 수원 아파트 매수자 중 30대 비중은 50.3%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용인도 30대 비중이 38.7%로 1위를 차지했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신청일 기준 2년 이내 출산·입양한 무주택 또는 1주택 가구에 최대 4억 원의 주택 구입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대상 주택은 전용 85㎡ 이하·9억 원 이하로 한정된다. 이 기준이 30대 신혼부부의 매수 타깃을 사실상 소형으로 고정시키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책 기준과 인구 구조 변화가 동시에 맞물렸다고 분석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신생아 특례대출이 가능한 면적과 가격대에 수요가 집중되면서 소형 면적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2인 가구 증가 흐름까지 맞물리며 중대형보다 소형 선호가 강화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선 ’15억 키 맞추기’…대출 한도가 집값 기준선 됐다
서울에서는 다른 형태의 대출 연동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소형 아파트 가격이 주택담보대출 가능 상한선인 15억 원에 수렴하는 ’15억 키 맞추기’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중소형 아파트(전용 60~85㎡) 평균 가격은 15억 1861만 원으로 두 달 연속 15억 원대를 유지했다. 서울 소형 아파트(전용 60㎡ 이하) 평균 가격은 10억 920만 원으로 201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10억 원을 돌파했다.
서울 성북구 ‘한신한진’에서도 전용 59㎡가 지난달 24일 8억 3300만 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지만, 같은 달 전용 68㎡는 7억 7700만 원에 불과했다. 소형이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보다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이다.
“입지보다 대출 한도”…정책이 집값을 설계한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단순한 소형 선호를 넘어 정책과 규제가 집값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신호라고 본다. 박합수 교수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입지보다 대출 가능 금액이 집값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장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정책 의존도가 커질수록 시장 왜곡도 심화된다는 점이다. 9억·85㎡ 기준에 맞춘 소형 수요가 몰리는 반면, 그 기준을 벗어나는 중대형 아파트는 수요층이 얇아지며 상대적 가격 약세가 고착화될 수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 정책이 축소되거나 폐지될 경우 소형 아파트 가격의 급격한 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