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계산대 앞에 붙은 ‘종량제 봉투 1인 1매 제한’ 안내문. 지난달 말 전국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목격된 이 풍경은, 중동 전쟁 장기화가 대한민국 가정 쓰레기봉투 수급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플라스틱 가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는 원료 가격 인상 부담에도 물량 부족 문제는 본격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4월부터는 원료 수급 차질이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중동산 원료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국내에 입항하기까지 약 25일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쟁 여파는 이달부터 실제 공급 감소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두 달 새 100만원 뛴 원료값…4월엔 추가로 60만원 더 오를 수도
플라스틱 가공업계의 타격은 단순한 가격 인상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종량제 봉투의 핵심 원료인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은 2월 기준 톤당 140만~150만원 수준이었으나, 3월에만 톤당 20만~40만원이 인상 통보됐다.
석유화학업체들은 전쟁 장기화를 이유로 4월에 톤당 60만원 이상 추가 상승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달 새 100만원가량이 오르는 셈이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업계의 계약 구조다. 플라스틱 가공업계는 합성수지를 먼저 공급받고 한 달 뒤 가격을 통보받는 ‘후불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3월에 사용한 원료의 가격이 4월에 확정되는 구조여서, 업체들은 오른 원가를 속수무책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납품 포기’ 현실화 우려…전체 업체 80% 이상이 영세 사업장
종량제 봉투는 조달청과의 다수공급자계약(MAS)을 통해 납품되며, 3년 단위로 갱신되는 구조라 원가 상승분이 즉각 납품단가에 반영되기 어렵다. 조달청이 최근 계약단가 조정 절차 신속화 지침을 마련했지만, 계약 상대방의 요청과 입증을 전제로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실질적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납품단가가 사실상 고정된 상태에서 원재료 가격이 급등할 경우, 일부 공급업체가 아예 납품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핵심 우려다. 전국 플라스틱 가공업체 2만6천 개 중 10인 이상 사업장은 5,500개에 그치고, 나머지 80% 이상이 영세 소규모 사업장이라는 점이 이 우려를 더욱 키운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재료 가격 급등이 한두 달만 이어져도 인건비와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업체가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패션·뷰티 대기업은 ‘버티기’…중소기업은 생산 차질 이미 시작
패션·뷰티업계는 현재까지 단기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입장이지만, 전쟁 장기화에 대비한 선제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중동 전쟁 이후 종이 포장재 구매 관련 상담 문의는 30~40% 증가했다. LF는 2021년부터 카톤랩 기반 종이 포장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애경산업은 재생 원료 적용 및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반면 중소 화장품 업체에서는 이미 균열 신호가 감지된다. 한 중소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이미 원부자재 가격 인상 공문이 내려왔고 화장품 튜브 생산은 막힌 상황”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뷰티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은 아직 버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중소기업은 여력이 적어 타격이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나프타 충격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급망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구조적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