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를 대량으로 사두려는 소비자, 일회용 컵 가격 인상을 걱정하는 카페 사장, 약 포장용 비닐이 끊길까 불안한 약국장.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플라스틱과 비닐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생활 곳곳에서 공급 대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나프타 가격은 지난달 23일 배럴당 614달러에서 3월 4일 777달러로 단 10일 만에 26%, 160달러 이상 급등했다. 국내 나프타 재고는 10~15일분에 불과해, 약 60일분을 확보한 원유 재고와 비교해 공급 여력이 현저히 낮은 상태다.
문제는 나프타가 단순한 산업 원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닐봉투, 플라스틱 용기, 합성섬유, 합성고무까지 일상 소비재 전반을 아우르는 소재인 만큼 가격 충격이 소비자와 영세업자의 생계까지 직접 파고드는 구조다.
사재기 조짐과 생활 물가 압박, 이미 시작됐다
24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한 마트에는 종량제 봉투를 대량 구매하려는 주민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30대 주부 A 씨는 “쓰레기봉투, 기저귀, 생리대를 조금씩이라도 쟁여놓고 싶어 온라인 대량 주문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세업자들의 고충도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경기 양평군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50대 B 씨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 1박스(1,000개) 가격이 4만 6,000원에서 4만 6,900원으로 올랐다”며 “2,000~3,000원짜리 커피를 파는 입장에서 몇백 원 인상도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페인트 업계에서도 삼화페인트가 3월 1일부터 주요 제품 공급가를 10% 이상 인상했고, 비닐 제조업체들은 나프타 kg당 15만~20만 원 인상을 통보받은 데 이어 차월에는 40만 원대 추가 인상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공급망 구조적 취약성, 중동 의존도가 뇌관
국내 원유 수입의 71%가 중동에서 공급되며, 나프타 또한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해 들어온다. 업계에서는 이란 갈등이 해협 봉쇄로 이어질 경우 공급 충격이 현재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고 본다.
석유화학업계는 이미 원료비 급등에 ‘3중 악재’가 겹쳤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원료 수급 불안에 따른 생산비 상승, 시장 수요 부진으로 인한 제품가 전가 불가, 주요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 하향 조정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여천NCC는 지난 3월 4일 고객사에 나프타 공급 조절 가능성을 공식 통보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유사한 패턴이지만 현재 상황은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한다.
정부 대응과 ‘트럼프 변수’…불확실성은 여전히 진행형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종량제 봉투 재고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며, 나프타 수출 제한과 대체 수입선 확보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정부 대응이 실질적인 공급 안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과 관련해 “총체적 해결에 가깝다”고 발언하고,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도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 해제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하루 만에 약 10% 폭락하는 등 유가가 급반전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