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급등으로 2%대 성장을 자신했던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국제유가와 달러·원 환율이 동시에 치솟으면서, 낙관론의 핵심 근거였던 수출 회복 시나리오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NH금융연구소는 중동 전쟁이 1년간 지속될 경우 한국 성장률이 0%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초 주요 기관들이 제시했던 2% 안팎의 전망치와 비교하면, 사실상 성장 동력이 증발할 수 있다는 경고다.
2%대 성장 자신감…반도체가 이끄는 회복 시나리오
올 초까지만 해도 시장의 시선은 긍정적이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각각 2.0%, KDI와 IMF는 1.9%를 제시했고, 씨티(2.4%), 노무라(2.3%), UBS(2.2%), 바클리(2.1%), JP모건(2.0%) 등 해외 투자은행(IB)들도 일제히 2%대 성장을 예상했다.
핵심 근거는 반도체 수출이었다.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117%, 2분기에는 96% 증가가 예상됐으며, 연간 기준으로는 달러화 기준 54% 증가가 전망됐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수출 확대만으로 실질 GDP 성장률을 1.6%p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환율 동반 상승…’반도체 효과’ 상쇄 우려
지난달 28일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국제유가 급등과 달러·원 환율 상승이 맞물리며, 반도체 수출 증가분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씨티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3%에서 2.2%로 낮췄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교역 조건을 악화시키고 내수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유가 급등 시나리오를 반영해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률 전망을 0.3~0.5%p 일괄 하향 조정했으며, 한국의 경우 기존 전망치(1.8%) 기준으로 1%대 초반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유가 민감도 분석을 통해, 배럴당 100달러면 성장률이 0.3%p, 150달러까지 오르면 0.8%p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NH금융연구소는 한발 더 나아가 분쟁이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에너지 가격 급등과 교역 위축이 겹치면서 성장률이 0%대로 내려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정부, 추경 카드 꺼내
전문가들은 단순한 성장률 하락보다 복합 리스크를 더 심각하게 본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100% 수입하는 국가로 중동 사태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며 “경기 둔화와 고환율이 지속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 차원의 경기 부양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공식적으로 위기 인식을 끌어올렸다. 재경부는 3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8개월 만에 ‘경기 하방 위험 증대’라는 표현을 재언급했다. 추경 규모는 15조~25조 원으로 거론되며, 유류비 부담 완화, 취약계층 에너지 지원, 소상공인 비용 경감, 수출 기업 물류비 지원 등이 주요 항목으로 검토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