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소울 푸드’로 불리던 삼겹살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1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국내산 삼겹살 판매량은 520만6천984kg로 전년(521만423kg)과 유사한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같은 기간 앞다릿살 판매량은 244만874kg에서 291만2천657kg으로 19% 늘어났고, 뒷다릿살은 34% 급증한 89만5천976kg을 기록했다. 삼겹살의 절반에도 못 미치던 앞다릿살 판매량이 56% 수준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2월 국산 돼지고기 시세가 전년 대비 18% 이상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가격 합리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평균 앞다릿살 소비자 가격은 100g당 1천509원으로 삼겹살(2천642원)의 57% 수준에 불과했다. 40%가 넘는 가격 차이는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선택 이유가 됐다.
대형마트 판매 데이터는 이 같은 소비 지각변동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마트가 최근 3년간 냉장 돈육 부위별 매출을 분석한 결과, 전체 돈육 매출 중 냉장 삼겹살 비중은 2023년 50.0%에서 2024년 48.9%, 2025년 47.9%로 지속 하락했다. 냉장 삼겹살 매출은 2024년 6%, 2025년 1% 감소한 반면, 앞다릿살은 2024년 2%에 이어 2025년 7% 증가했다. 특히 뒷다릿살은 2025년 기준 매출이 14% 늘며 두 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했다.
고물가가 바꾼 육류 소비 지형도
앞다릿살과 뒷다릿살의 약진은 단순히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겹살에 비해 살코기가 많아 지방이 적고, 쫄깃한 식감 덕분에 양념구이는 물론 일반 구이용으로도 조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건강을 중시하는 시니어 세대에게는 저지방 고단백 특성이, 젊은 세대에게는 다양한 조리법 활용도가 각각 매력 요인으로 작용했다.
편의점 업계도 이러한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CU가 매년 3월 3일 진행하는 ‘삼겹살 데이’ 행사 매출은 2023년 전년 대비 737.2% 급증한 데 이어 2024년 49.8%, 2025년 64.5% 신장을 기록했다. 고물가로 외식 대신 집에서 고기를 즐기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편의점이 신선 식재료 구매 채널로 자리 잡은 것이다. CU 상품기획 담당자는 “앞으로도 가까운 편의점에서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통업계의 생존 전략, ‘가격 경쟁력’
유통업계는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 심리를 정확히 읽어냈다. 이마트 관계자는 “삼겹살은 고객이 많이 찾는 품목 중 하나이지만 가격 변화에 민감하다”며 “통합 매입으로 원가를 낮추고, 사전 비축기획을 통해 삼겹살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냉동 대패 삼겹살은 2025년 매출이 7.1% 늘어나며 가격 합리성이 곧 판매량으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롯데마트가 출시한 수입 돼지고기 브랜드 ‘끝돼’는 2025년 6~12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00% 증가하며 가격 경쟁력의 위력을 보여줬다. 한편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도드람 인증 고급 맛집들이 숙성육, 화로구이, 돈가스 등 다양한 소비 접점을 확대하며 신뢰 기반의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삼겹살 중심의 기존 시장 구조 붕괴는 축산농가에게는 위기 신호다. 전통적으로 고수익을 보장하던 삼겹살 판매가 정체되면서 농가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메뉴의 화려함보다 식재료의 신선도와 원산지, 품질 등 본인이 부여하는 가치를 우선시하는 ‘가치 소비’ 트렌드가 자리 잡았다”며 “축산업계도 부위별 특성을 살린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