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국민의 행복은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5일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6.4점(10점 만점)으로 전년과 동일한 수준에 머물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3위라는 최하위권 순위도 변함없었다. 반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2년 연속 증가해 2011년(31.7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더 심각한 것은 우울과 걱정을 나타내는 부정정서가 3.8점으로 전년 대비 0.7점이나 급증했다는 점이다. 2022년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던 수치가 3년 만에 다시 악화되면서, 한국 사회 전반에 심리적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은 4,381만원으로 전년보다 3.5% 늘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도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소득 격차가 만든 ‘두 개의 대한민국’
삶의 만족도를 소득별로 들여다보면 격차는 더욱 극명하다. 월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만족도는 5.8점으로 평균보다 0.6점이나 낮았다. 반면 월소득 300만원 이상 가구는 6.4~6.5점으로 평균 수준을 유지했다. 단 200만원의 소득 차이가 삶의 만족도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이 된 셈이다. 상대적 빈곤율도 15.3%로 전년 대비 0.4%포인트 상승하며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부정정서 역시 소득 수준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월소득 1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은 4.2점으로 가장 높았고, 5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은 3.7점으로 가장 낮았다. 소득 양극화가 심리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전체의 행복도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정부와 국회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49.6%로 3년 연속 하락해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사회적 신뢰 기반이 무너지면서 불만과 불안이 증폭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고령층 빈곤 39.8%, 선진국의 수치가 아니다

가장 충격적인 수치는 66세 이상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다. 2023년 기준 39.8%로, OECD 37개 회원국 중 30%를 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라트비아, 뉴질랜드 단 3개국뿐이다. 프랑스의 고령층 빈곤율이 7~8%, 일본이 15~18%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수치는 거의 재난 상황에 가깝다.
이는 공적연금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기초연금은 2024년 기준 월 약 35만원으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국민연금 역시 평균 수령액이 100만원대에 불과해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복지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을 최소 월 100만원대 이상으로 인상하고,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60세로 낮춰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재정 부담 우려로 정책 개선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청년부터 노년까지, 모든 세대의 위기
청년층도 예외가 아니다. 2024년 대학졸업자 취업률은 69.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하락했다. 코로나19 이후 3년 연속 회복세를 보이다 2024년 다시 꺾인 것이다.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신규 일자리 창출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비정규직 비중 증가가 청년층의 경제적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살률의 성별 격차도 주목할 대목이다. 2024년 남성 자살률은 41.8명으로 여성(16.6명)의 2.5배에 달했다. 실업과 경제적 압박이 남성에게 더 큰 심리적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회단체 참여율도 52.3%로 전년 대비 5.9%포인트나 급감하며, 사회적 연대감마저 약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소득 격차, 세대 갈등, 정신건강 위기가 복합적으로 얽힌 ‘불행의 덫’에 빠져 있다. 경제 지표만으로는 국민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만큼, 이제는 사회안전망 강화와 정신건강 서비스 확충 등 실질적인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