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전후(戰後)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정당이 개헌선을 돌파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지난 8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전체 465석 가운데 316석을 확보하며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개헌에 필요한 310석을 단독으로 넘긴 것은 1945년 이후 처음이다. 일본 국내 정치의 판도가 완전히 바뀐 가운데, 우리 외교부는 9일 “일본의 정국 변동과 관계없이 한일관계는 계속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번 선거 결과는 단순한 여당의 승리를 넘어 일본 정치사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자민당은 선거 전 198석에서 118석이나 증가하며 의회를 장악했다. 이는 2009년 민주당이 기록한 308석, 1986년 자민당의 300석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연립 파트너인 일본혁신당과 합치면 352석으로, 의회의 75%를 차지하는 초강력 여당 체제가 구축됐다.
전후 최대 압승, 헌법 개정 현실화되나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 후 불과 4개월 만에 이 같은 성과를 냈다. 전임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2024년 중의원 선거와 2025년 참의원 선거에서 연속으로 다수당 지위를 잃고 결국 사임한 것과 대조적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다카이치의 높은 개인 인기도, 특히 젊은 유권자층과 보수진영의 결집이 승리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더 주목할 점은 개헌 가능성이 현실화됐다는 사실이다. 일본 헌법 개정은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이미 이 조건을 충족했다. 평화헌법 9조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이며,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정부가 강경한 대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야당 몰락의 배경, 유권자 이반 초래
자민당의 압승 이면에는 야당의 참담한 패배가 있었다. 전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자민당의 오랜 연립 파트너였던 공명당이 전략적으로 병합해 개혁신당을 창설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두 정당의 기존 지지층 상당수가 이 합당에 반발해 투표를 거부한 것이다. 개혁신당은 기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잃는 참패를 당했고,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사이토 테츠오 전 공명당 대표가 잇따라 사임했다.
공명당이 소선거구 출마를 전면 포기하고 비례대표에만 출마한 것도 패배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결과를 “다카이치에 대한 국민적 위임이자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에 대한 거부”로 평가했다. 일본 정치 지형이 자민당 중심의 일당 우위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일관계, 안정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 정부는 일본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신중한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외교부는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안정적 발전 방향에 대해서는 양국 간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다”며 관계 발전 가능성을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강경 보수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한일 양국이 구축해온 협력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민당이 개헌선을 돌파하면서 역사 인식, 영토 문제 등에서 일본의 입장이 더 강경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국내 정치의 보수화가 대외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일 관계가 안보·경제 협력에서 진전을 보인 만큼, 정치적 변동성을 관리하면서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 정치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 한국은 양자 관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다카이치 정부의 향후 행보를 주시하며, 한일 양국이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