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이틀간 국립중앙박물관 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개관 1시간 30분 전부터 줄을 선 관람객들로 입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난 2월 16일과 18일 하루 평균 4만 3,232명이 박물관을 찾았다. 소방법과 시설 규모를 고려한 하루 적정 관람 인원 1만 5천명의 2.9배에 달하는 수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월 18일까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총 115만 8,898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83만 4,213명)보다 38.9% 급증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관람객 수는 600만명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세운 사상 최고 기록(650만 7,483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 박물관·미술관 5위권 진입은 충분히 가능한 수치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관람 품질 저하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국민이 박물관을 얼마나 사랑하고 이용하는지 문화의 민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자평했지만, 현장에서는 문화재를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람객이 밀집되고 있다.
‘명절 문화 성지’로 급부상한 배경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급증은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우선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처럼 대중적 호소력이 강한 기획전시가 주효했다. 이 전시는 관람객 3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블랙핑크와의 협업 행사(2월 26일 예정)처럼 K-팝 문화와 결합한 참여형 콘텐츠도 젊은 층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문화 소비 패턴 변화가 자리한다. 과거 명절 여행지가 경주나 제주도 같은 전통 관광지였다면, 이제는 박물관·미술관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박물관 관계자가 “설 연휴마다 관람객이 몰리는 명절 문화 성지로 자리잡았다”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2024년 설 연휴(3만 2,193명) 대비 2.7배 증가한 수치는 이러한 트렌드를 뒷받침한다.
과밀화가 낳은 구조적 문제
문제는 시설이 관람객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설 연휴 하루 평균 관람객 4만 3,232명은 적정 인원의 거의 3배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붐빈다”는 수준을 넘어 화재 안전, 문화재 보존, 관람 동선 확보 등 다층적 위험 요소로 이어진다.
박물관 측도 이를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오는 3월 16일부터 개관 시간을 기존 오전 10시에서 9시 30분으로 당기되, 폐관 시간도 오후 6시에서 5시 30분으로 앞당긴다. 수·토요일 야간 개장(오후 9시)은 유지하지만, 전체적으로 운영 시간을 30분 단축해 관람객 분산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연간 휴관일을 기존 3회에서 7회로 늘려 시설 정비 시간을 확보한다.
유료화 카드, 양날의 검
박물관이 꺼내 든 최종 카드는 ‘유료화’다. 2026년 내 온라인 예약·예매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2027년 상반기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고객정보통합관리(CRM) 시스템을 구축해 관람객 연령, 국적, 체류 시간, 전시실 방문 패턴 등을 분석한다.
문화 전문가들은 이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한다. 박물관 업계에서는 적정 수준의 입장료가 무분별한 관람을 막고 수익을 운영비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유료화가 관람 품질 제고의 핵심 수단이라고 본다.
다만 공공성 유지라는 과제도 남는다. 외국인 관람객 비중이 1.7%에 불과한 현 상황에서, 입장료 도입이 저소득층이나 지방 거주자의 문화 향유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홍준 관장이 강조한 “양적 팽창 달성, 이제는 질적 도약”이라는 방향성이 결국 ‘누구를 위한 도약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는 이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연간 650만명이라는 성공 신화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적정 규모로 관람객을 조정해 질적 만족도를 높일 것인가. 유료화는 이 딜레마를 해결할 열쇠가 될 수도, 또 다른 논란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대표 문화기관이 이제 ‘성장’이 아닌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