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방산업계가 공을 들여온 동남아시아 함정 시장에 강력한 변수가 등장했다. 일본이 자국 자위대 보유 중고 무기를 개발도상국에 무상 또는 저가로 제공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면서, K-방산의 핵심 수출 거점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21일 비전투 목적에 한정했던 기존 무기 수출 규정을 폐지하고 살상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했다. 이에 더해 2027년 정기국회에서 자위대법을 개정해 퇴역 호위함·잠수함 등 중고 무기와 탄약도 타국에 넘길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호위함·잠수함이 핵심 전장…필리핀·인도네시아 직접 겨냥
이번 정책의 주요 대상국은 총 17개국으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핵심으로 꼽힌다. 두 국가는 이미 일본 중고 무기 도입에 관심을 표명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점이 K-방산과의 직접적인 충돌 지점이다. 한국은 필리핀에 호세 리잘급 호위함(2,600톤)을, 인도네시아에는 나가파사급 잠수함(1,400톤)을 수출하며 이 시장에서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왔다. 일본이 동급 함정을 무상 또는 시가 이하로 제공할 경우, 국방 예산이 제한적인 이들 국가로서는 일본산이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부각될 수 있다.
“발주 시점 늦춘다”…직접 대체 아닌 간접 타격이 더 위험
업계가 더 주목하는 것은 일본 중고 무기의 ‘간접적 시장 교란’ 가능성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중고·무상 수출이 당장 신조 함정 수주를 직접 대체하지 않더라도, 동남아 국가들의 단기 전력 공백을 메우며 발주 시점과 예산 배분을 늦추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일본의 외교적 자산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수십 년간 대규모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동남아 국가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해 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방산 수출의 핵심인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게 될 경우, 가성비를 강점으로 내세워온 K-방산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검증된 기술·납기 신뢰가 방어선…한국도 퇴역 무기 전략 재설계 필요
다만 일본의 위협이 단기간에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성능이 충분히 검증된 일본 무기는 드물다”며 “한국은 다수의 실전 배치 경험과 납기 준수로 신뢰성을 입증해 왔기 때문에 바이어들에게 더 합리적인 대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기적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조선업계는 한국 역시 퇴역 함정을 전략 자산으로 재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방국의 전력 공백 지원에 퇴역 무기를 활용하고, 이를 후속 신조함 수출 및 교육·훈련 패키지와 연계하는 ‘패키지 딜’ 전략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일본의 무기 수출 정책 전환은 단순한 군수 거래를 넘어 동남아시아의 안보 질서 재편과 방산 시장 주도권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K-방산이 쌓아온 기술력과 신뢰는 여전히 유효한 자산이지만, 일본의 자본·외교력·첨단 기술력이 결합된 공세에 맞서는 선제적 전략 없이는 동남아 텃밭을 온전히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