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위헌 판결을 내린 지 불과 24시간 만에, 백악관은 새로운 법적 근거로 15% 글로벌 관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2월 20일 대법원이 “관세 부과 권한은 의회에 있다”며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기반 상호관세를 6대3으로 무효화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무역법 122조를 꺼내들었다. 당초 10%로 발표했던 관세율을 하루 만에 법적 최대치인 15%로 올리는 ‘무리수’까지 두며 강경 기조를 분명히 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2일 방송 인터뷰에서 “법적 수단은 변할 수 있지만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연속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로드맵은 명확하다. 의회 승인 없이 최장 150일간 가동 가능한 122조 관세를 최대한 유지한 뒤, 무역법 301조(‘슈퍼 301조’) 기반 국가별 조사로 전환해 상호관세를 사실상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관세 먼저, 명분은 나중에”…역순 전략의 법적 위험
정상적인 통상 절차는 ‘불공정 무역관행 발견 → 관세 부과’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법은 정반대다. 그리어 대표는 “불공정 무역관행과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쌀 농가를 죽이는 해외 쌀시장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를 301조 조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관세 부과 목표를 먼저 설정한 뒤 이를 정당화할 법적 근거를 찾는 방식이다.
문제는 새로운 무역법 122조 관세 역시 동일한 헌법적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는 122조를 관세 부과에 사용한 첫 대통령으로, IEEPA와 마찬가지로 선례가 없다. 대법원이 IEEPA 판결에서 적용한 ‘중대 질문(major questions)’ 원칙—수조 달러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초래하는 조치는 의회의 명확한 위임이 필요하다는 법리—이 122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론은 냉담…지지 34% vs 반대 64%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드라이브는 국민 여론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ABC뉴스·입소스가 2월 12~17일 미국민 2,5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2%포인트)에서 관세 정책 지지율은 34%에 그쳤다. 반대 의견은 64%로, 전체 국정수행 지지도(39%)보다 5%포인트 낮았다.
관세가 생필품 가격 인상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권자들의 저항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내에서도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트럼프 개인의 강경 노선과 보수 진영의 헌법주의적 입장(의회 권한 존중) 사이의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중간선거 앞둔 ‘정치적 부메랑’ 우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관세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메랑이 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22일 CNN 인터뷰에서 한국, 일본, 대만, EU 등과 체결한 무역합의를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상호관세 폐지로 ‘관세 인하’의 거래 가치가 하락한 상황에서도 대미투자액 약정을 줄이지 않겠다는 입장은 일방적 이익 추구로 비쳐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무역적자 상황이 무역법 122조 요건을 충족하는지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법적 도전과 여론 악화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관측한다. 대법원이 ‘중대 질문’ 원칙으로 제동을 건 핵심 메시지—”세금의 일종인 관세는 의회 권한”—를 곱씹을 시간도 없이 법적 근거만 바꿔가며 밀어붙이는 행보가 유권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