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단순한 산업 호황을 넘어 국가 재정 지형까지 흔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분기에만 94조 원이 넘는 합산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정부가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당시 상정한 초과세수 예상치(27조 원)를 크게 웃도는 규모의 세수가 유입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증권은 올해 초과세수가 정부 예상치의 2.6배인 70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에 따라 2차 추경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일각에서는 추가 지출 확대보다 국가채무 상환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하이닉스 1분기 실적, 법인세 ‘자동 증폭’ 구조 작동
초과세수 급증의 핵심 동력은 법인세다. 법인세는 당해연도 상반기 실적을 기준으로 8월에 예납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기업 실적이 급등하면 세수도 연쇄적으로 늘어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삼성전자는 1분기에만 57조 2,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55% 급등한 수치이자, 삼성전자의 2025년 연간 영업이익(43조 5,000억 원)을 단 3개월 만에 뛰어넘은 성과다. SK하이닉스 역시 1분기 영업이익이 37조 6,000억 원(전년 동기 대비 405% 증가)으로 집계되어, 2025년 연간 영업이익(47조 2,000억 원)의 80%에 육박했다.
두 기업의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94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반도체 호황 파급효과에 따른 주식시장 활황으로 증권거래세 수입도 당초 전망치(5조 4,000억 원)를 상회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더해진다. 실제 1차 추경 편성 당시 초과세수 재원 중 법인세가 14조 8,000억 원, 증권세가 10조 3,000억 원을 차지했다.
정부 예상치와 시장 전망 ‘2.6배 격차’…2차 추경 논의 수면 위로
정성태 삼성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주요 반도체 기업의 순이익 전망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까지 감안하면, 올해 세수 증가는 4월 추경에서 정부가 예상한 27조 원을 크게 상회하는 7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공식 예상치와 시장 추정치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는 셈이다.
초과세수 급증 전망이 확산되자 일각에서는 2차 추경 편성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편성된 추경의 신속 집행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면서도, “2차 추경은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지출 확대보다 채무 상환이 먼저”…재정건전성 논쟁 가열
그러나 초과세수를 추가 지출에 쏟아붓는 것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국가재정법 제90조는 세계잉여금의 30% 이상을 국채 원리금 상환에 의무적으로 활용하도록 규정하며, 교부금 정산까지 합산하면 실질적으로 51% 이상이 채무 감축에 쓰이는 구조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1차 추경 분석 보고서에서 “초과세수 전액을 지출로 소진하는 것은 직접적인 국채 추가발행과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올해 본예산 기준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이미 107조 8,000억 원(GDP 대비 4.0%)에 달하는 상황에서 나온 경고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초과세수가 발생하면 국가재정법 원칙에 따라 채무 상환에 먼저 활용하는 것이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맞다”며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초과세수를 지출 확대에만 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2021~2022년 60조 원대 초과세수가 발생한 뒤 2023~2024년 연속 세수 적자가 이어진 전례를 근거로, 호황기 세수의 구조적 변동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