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둔 베이비부머 고민
노동시장 새 패러다임
경제성장 열쇠는 장년층?
“은퇴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노후 대비는 부족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을 재촉하던 김 모(59) 씨는 요즘 발걸음이 무겁다. 30년 넘게 몸담은 회사에서의 정년이 이제 1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년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김 씨와 같은 중장년층에게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는 노동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했다.
법정 정년을 늘리는 대신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으로 경제계와 노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령화가 부르는 경제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현 추세대로라면 우리나라는 향후 10년간 노동 공급 규모가 141만 명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을 3.3%(연 0.33%)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10년간 평균 잠재성장률(연 1.6%)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은행은 고령층의 높은 계속근로 의지, 은퇴 후 소득 공백, 낮은 만족도의 정부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을 감안하면 ‘고령층이 더 오래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단순 정년 연장의 한계
그러나 단순히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나왔다.
한국은행은 2016년 임금체계 조정 없이 시행된 정년 연장 사례를 분석한 결과, 정년 연장으로 55~59세 임금근로자의 고용률은 증가했으나 그 혜택이 노조가 있는 대기업에 집중됐고 조기퇴직 증가 등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더 심각한 것은 청년 고용에 미친 영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연장은 2016~2024년 중 23~27세 임금근로자 고용률을 6.9%(약 11만 명) 감소시켰다.
고령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는 약 1명(0.4~1.5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삼일 한은 고용연구팀장은 “연공형 임금체계와 고용 경직성을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면 청년고용 위축, 조기퇴직 증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등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반복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재고용 제도의 가능성
한국은행은 대안으로 ‘퇴직 후 재고용’ 제도 활성화를 제시했다. 이는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와 근로관계를 종료한 뒤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해 다시 고용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를 통해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근로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고령층의 계속 근로를 장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 팀장은 “작년 기준 약 8.24% 기업이 퇴직 후 재고용제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임금 연공성이 낮고 직무급이나 직능급을 운영하는 사업체일수록 재고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고 말했다.
보고서는 65세까지 계속 근로하는 근로자 비율이 10년에 걸쳐 50~70%까지 늘어난다고 가정할 경우, 향후 10년간 성장률을 0.9~1.4%p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인구감소로 인한 경제 성장률 하락의 3분의 1 정도는 계속근로를 통해 막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근로자 개인 측면에서도 65세까지 일하게 되면 기존 소득 공백 기간 동안 정부 노인 일자리에 종사하는 것보다 월 소득이 179만 원 늘고, 65세 이후 연금 수령액도 월 14만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기업들의 다양한 고령인력 활용 사례
한편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고령인력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숙련 재고용’, ‘베테랑’ 제도를 통해 생산직과 영업직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하고 있으며, 포스코는 정년퇴직자의 70%를 최대 2년까지 재고용하기로 합의했다.
SK하이닉스의 ‘마스터’ 직책이나 삼성전자의 ‘시니어 트랙’ 제도처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위한 별도 트랙을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정년 연장보다 생산성을 반영한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구절벽 시대, 세대 간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고령인력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