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중국향 H200 칩 수출 생산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불과 2개월 전 공식 판매 승인 건수가 ‘0건’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발언은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진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중국 고객에 H200 칩을 라이선스했다”며 “우리는 (중국 수출 칩의) 생산을 재개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관련 공급망 상황이 “불과 2주 전과도 다를 만큼 급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개월간 ‘0건’…정책과 현실의 간극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2025년 12월 H200의 중국 수출을 허용한다고 선언했으나, 건별 라이선스 심사 의무화와 국무부·국방부·에너지부의 추가 검토 요건이 붙어 실제 출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월 24일 하원 청문회에서 데이비드 피터스 상무부 수출집행 차관보가 “현재까지 판매 승인 사례는 없다”고 공식 확인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국무부는 수출 물량의 절반을 미국 기업에 배정하고, 미국 내 시험기관 검증 및 최종 사용처 보고를 의무화하는 추가 조건을 내걸었다. 반면 중국 세관은 올해 1월 14일 H200 수입 통관을 차단하며 자급자족 기조를 재확인했다. 황 CEO의 이번 ‘재개 선언’은 이러한 복잡한 정책 지형 속에서 나온 것이다.
‘1조 달러’ 시장 전망, 한국 HBM엔 기회
황 CEO는 전날 기조연설에서 제시한 ‘AI 칩 매출 기회 1조 달러(약 1500조 원)’ 전망에 대해 “앞으로 21개월이 남았으니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수치는 블랙웰과 루빈 GPU만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CPU와 추론 전용 칩, 차세대 ‘파인만’ GPU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같은 수요 전망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품목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직결된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전 세계 HBM 시장의 75~90%를 점유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의 루빈 아키텍처도 한국산 HBM4 공급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다. 실제로 올해 2월 1~20일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4.1% 급증했다.
삼성·TSMC 협업, 공급망 재편 한계도 인정
황 CEO는 제조 역량 확보와 관련해 “TSMC와 협업하고 있고, 추론용 ‘그록’ 칩에서는 삼성과도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메모리 제조사와도 협력 중임을 강조했다.
다만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제시한 ‘대만 반도체 생산량 40%의 미국 이전’ 목표에 대해서는 “성사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황 CEO는 “전 세계 수요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공급 확충이 이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AI 전략 방향에 대해서도 직접 언급했다. 그는 “한국, 독일, 일본은 IT 혁명을 건너뛰고 바로 AI 혁명으로 도약하면 된다”며 “이것이 내가 매일 이 나라들에 전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이 기존 메모리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AI 인프라 핵심 공급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신호로 읽는다. 다만 중국 기업 CXMT가 HBM3 양산을 준비하고 있어, 단기 우위가 장기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알고리즘 분야에서의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분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