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 이후 24년 만에 한국 증시가 역사상 최대 낙폭을 경신했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라는 지정학적 충격이 방아쇠를 당기며 코스피지수가 단 이틀 만에 약 한 달치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3월 4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698.37포인트(12.06%) 급락한 5093.54에 장을 마쳤다. 전날(-7.24%)에 이어 이틀간 누적 19.3% 폭락하며 코스피와 코스닥에서는 각각 1150포인트, 214포인트가 증발했다.
이날 하락률 12.06%는 직전 역대 1위였던 2001년 9월 12일(12.02%)을 넘어서는 사상 최대 기록이다. 매도 사이드카가 이틀 연속 발동됐으며, 코스피·코스닥 양대 시장에 20분간 거래를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동시 발동됐다.
전쟁·유가·환율, 삼중 충격이 한국 증시를 직격하다
이번 폭락의 직접적 도화선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합동 공습이다. 공습 36시간 만에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포함한 지도부 48명이 제거됐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통과 선박 공격을 예고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핵심 통로다. 원유·가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유가 급등이 기업 이익률 악화와 인플레이션 심화, 금리 인상 압박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취약점이 부각됐다. 여기에 이라크의 원유 감산 결정, 블랙스톤의 사모 신용시장 대량 환매까지 겹치며 글로벌 투자 심리가 급격히 냉각됐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한국 주식시장만 유독 폭락을 맞은 것은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급등한 데 따른 되돌림의 성격이 강하다”며 “외국인 투자자로서도 대외 변수가 불안한 가운데 유동성과 환금성이 가장 높은 한국 시장에서 우선 현금화하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업종 가리지 않은 패닉…현대차 15%, 반도체주도 두 자릿수 낙폭
이날 폭락은 특정 업종에 국한되지 않았다. 현대차가 15.80% 급락했고 기아(-14.04%), HD현대중공업(-13.39%), SK스퀘어(-12.74%), LG에너지솔루션(-11.58%), 삼성전자우(-11.15%), 삼성바이오로직스(-9.82%), 한화에어로스페이스(-7.61%)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줄줄이 두 자릿수 낙폭을 기록했다.
신한투자증권 노동길 연구원은 “코스피는 신흥국 포지션 내 유동성이 높아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경우 민감하게 타격을 받는다”며 “중동 사태가 유가와 LNG 가격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아시아 외환시장으로 전이된 뒤 외국인의 포지션 재조정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증권가 “공포 절정 구간…펀더멘털은 훼손 안 됐다”
폭락에도 불구하고 증권가는 기업 이익 펀더멘털이 유효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역사상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여섯 차례의 사례에서 발동 후 5거래일 평균 수익률은 3.4%, 20거래일 평균 수익률은 7.7%였다.
삼성증권 조아인 연구원은 “전쟁 양상의 불확실성이 높아 당분간 변동성 장세가 지속될 수 있지만, 펀더멘털과 이익을 고려하면 현재와 같은 주가 하락은 과도하다”고 진단했다. 한지영 연구원도 “코스피가 5000을 밑돌기 위해서는 이익 개선 전망이 훼손돼야 하는데 그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다만 관망론도 존재한다. 노동길 연구원은 “외환시장과 미국 채권시장이 불안하면 외국인은 가격과 무관하게 포지션을 줄일 수 있어 반등이 단기간에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며 “유가와 환율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며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