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포격과 운임 폭등이 이어지는 중동에서 오히려 한국 농식품 수출이 역대급 성장세를 기록했다. 분쟁 지역에서 수출이 급증한다는 역설적 현상에 업계 안팎의 시선이 쏠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6년 1~4월 K-푸드의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 수출액이 1억6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7.6% 증가했다고 21일 밝혔다. 같은 기간 K-푸드 전체 수출 증가율(4.7%)과 비교하면 약 8배에 달하는 성장폭이다.
GCC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쿠웨이트·바레인·오만 6개국으로 구성된 고소득 산유국 블록이다. 이번 수치는 홍해 선박 공격과 물류 대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나온 결과여서 주목도가 높다.
포화 뚫은 항로 전략…’코르파칸 우회’가 열쇠
K-푸드가 분쟁의 틈새를 비집고 중동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와 업계의 기민한 물류 재편이 있었다. 농식품부는 중동 최대 환적 거점인 UAE 제벨알리항 대신, 호르무즈 해협 바깥 오만만 연안에 위치한 코르파칸항을 대체 경로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르파칸항은 위험 해역인 페르시아만 심부로 진입하기 전에 하역이 가능한 심해 항만이다. 이곳에서 내린 화물은 트럭을 통해 GCC 각국 내륙으로 분산 수송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홍해를 통한 컨테이너 통과량은 최대 40% 이상 감소했고, 아시아~유럽 항로 운임은 2023년 중반 대비 약 2배 이상 오른 상태다.
신선 과일의 경우 물류 부담이 더 크다. 딸기·포도·배 등은 높은 유류할증료에도 불구하고 항공 운송을 지속한 결과, 배 수출이 62.4%, 포도 25.5%, 딸기 16.5% 각각 증가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농업경제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브랜드·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에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합리적 운임 수준과 콜드체인 인프라 확보가 병행되지 않으면 물량은 늘었는데 수익성은 악화되는 구조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라면·딸기·배…품목별 성장도 ‘뚜렷’

품목별로는 라면이 K-푸드 수출을 이끌었다. 1~4월 라면 수출액은 6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9% 급증했다. 과자류(2억7000만 달러), 음료(2억4000만 달러), 쌀가공식품(1억 달러)도 가공식품 수출 실적을 뒷받침했다.
국내 증권사 식품·음료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K-푸드는 이미 일시적 소비 트렌드가 아니라 글로벌 범용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며, GCC 수출 급증을 “미·중 편중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정량적 신호”로 평가한다. 특히 라면과 스낵을 중심으로 한 매운맛 K-푸드가 SNS·유튜브 챌린지 콘텐츠와 결합하면서 GCC 내 젊은 소비층의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체 K-푸드는 미국·중국도 동반 성장…GCC만의 고성장이 변수
주력 시장인 미국(6억6000만 달러·+8.9%)과 중국(5억2000만 달러·+15.5%)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신규 유망 시장으로 분류되는 EU(3억3000만 달러·+8.7%)와 중남미(8500만 달러·+13.6%)도 두 자릿수 성장에 근접했다. 올해 1~4월 K-푸드 전체 수출액은 35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34억2000만 달러)보다 4.7% 늘었다.
다만 수출액 급증이 기업 수익성 개선으로 직결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업계 관계자들은 “선박 우회, 항공 운송 지속, 전쟁 위험 보험료 급등 등으로 마진이 생각만큼 늘지 않는 구조”라고 전한다. GCC는 K-푸드의 최고 성장 지역으로 부상했지만, 동시에 분쟁 격화나 항로 봉쇄 시 수출이 일시에 잠길 수 있는 고위험 시장이라는 점도 시장에서는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