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여윳돈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주식과 ETF에 몰린 ‘빚투(차입투자)’ 열풍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25년 자금순환(잠정)’ 통계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지난해 순자금 운용액(여윳돈)은 269조 7000억 원으로 전년(215조 5000억 원) 대비 54조 2000억 원 증가했다. 2009년 통계 편제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가계의 금융기관 차입도 29조 1000억 원에서 75조 9000억 원으로 무려 160% 폭증했다. 여윳돈과 빚이 동시에 커지는 이중적 구조가 드러난 셈이다.
주식·ETF가 이끈 자금운용 폭증
가계의 전체 자금 운용 규모는 342조 4000억 원으로 전년(248조 8000억 원) 대비 93조 6000억 원 급증했다. 이 증가를 주도한 것은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로, 42조 2000억 원에서 106조 2000억 원으로 64조 원 늘어나며 전년 대비 152%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국은행 자금순환팀 김용현 팀장은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운용 확대는 주식 상승에 따른 주식 투자와 ETF·펀드 투자 증가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채권 투자는 37조 4000억 원에서 4조 6000억 원으로 32조 8000억 원 급감하며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가계가 안정적 채권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주식 중심으로 자산을 재편한 것으로 시장에서는 분석한다.
빚도 함께 늘었다…레버리지 투자 확산
자금 운용이 늘어난 한편, 금융기관 차입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히 예금취급기관(은행) 차입이 33조 5000억 원에서 61조 9000억 원으로 확대되며 전체 조달 증가를 이끌었다. 김 팀장은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기관 차입을 중심으로 자금 조달 규모도 늘었다”고 밝혔다.
금융전문가들은 이 흐름이 단순한 저축 증가가 아니라 차입금으로 투자 수익을 추구하는 ‘레버리지 투자’가 동반된 결과로 해석한다. 작년 말 기준 가계 금융자산은 6201조 9000억 원으로 729조 3000억 원 늘었지만, 금융부채도 2441조 2000억 원으로 73조 7000억 원 증가했다. 순금융자산 개선이 실질 저축보다 시장 변동성에 더 크게 노출된 구조라는 점에서 우려도 제기된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소폭 하락…규제 효과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2025년 말 기준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8.6%로 전년(89.6%) 대비 1.0%포인트 낮아졌다. 6·27 부동산 대책, 11·5 대책,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 등 연속된 대출 규제가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 GDP 증가율 이하로 억제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편에서는 가계의 ‘투자 공격화’와 기업의 ‘투자 소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적 불균형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금융 법인기업의 순자금조달은 77조 5000억 원(2024년)에서 34조 2000억 원(2025년)으로 55% 축소됐고, 김 팀장은 “투자가 지연되면서 남는 이익이 예치금으로 쌓이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정부의 순자금조달은 국채 발행 확대 등의 영향으로 36조 1000억 원에서 52조 6000억 원으로 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