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17개국을 상대로 원유 대체 도입에 나서며 에너지 수급 방어선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20~25%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수입 원유의 약 70%가 경유하는 핵심 병목 구간이다.
양기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7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대체 경로를 통해 4월분 원유 5000만 배럴, 5월분 6000만 배럴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평시 도입량 8000만 배럴의 각각 60%, 70% 수준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과 UAE 송유관의 실질 활용 가능 물량이 하루 300만~350만 배럴, 즉 기존 통과량의 약 15~17%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완전한 대체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한국이 17개국 분산 도입이라는 전략을 택한 이유다.
비축유 스와프, 일주일 새 1000만 배럴 급증
정부는 대체 원유 도입에 걸리는 시차를 메우기 위해 비축유 스와프(SWAP) 제도를 운용 중이다. 정유사가 해외 원유 확보를 입증하면 정부가 먼저 비축유를 빌려주고, 실물이 국내에 도착하면 돌려받는 구조다.
현재 국내 4개 정유사가 신청한 스와프 물량은 3000만 배럴 이상으로, 지난주 발표된 2000만 배럴에서 단 일주일 만에 1000만 배럴이 추가됐다. 양 실장은 “이미 2건은 계약이 완료돼 비축유가 이송됐고, 이번 주 4건 이상 추가 계약이 예정돼 있다”며 “금주까지 스와프 물량은 총 800만 배럴”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신속한 제도 운용은 한국이 보유한 200일분 비축유를 완충 장치로 활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나프타 공급 80~90% 유지…5월 확보가 관건
정부는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경질 납사) 수급 관리에도 집중하고 있다. 4월 예상 수입량은 약 77만 톤으로 예년(116만 톤) 대비 70% 수준이지만, 국내 생산량 110만 톤 이상을 합산하면 평상시 대비 80~90%의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양 실장은 “5월에 쓸 물량이 4월에 결정되기 때문에 코트라 등 해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5월 물량 확보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며 추경 예산 편성 시 기업과 협력해 추가 조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는 이미 지난달 27일부터 나프타 수출 제한과 매점매석 금지 등 수급 안정 조치를 시행 중이다.
PP·PE 규제는 ‘신중 모드’…생활용품 파급 우려
라면·과자 포장재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폴리프로필렌(PP)·폴리에틸렌(PE)에 대한 매점매석 금지 조치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양 실장은 “주방용 일회용 비닐장갑처럼 생활 주변에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단순 규제만 내놓으면 현장 혼선이 생길 수 있다”며 “실제 관리 가능한 범위를 면밀히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위기가 단순한 가격 변수를 넘어 실질적인 공급 리스크로 현실화된 만큼, 수급 선행 관리와 대체 조달 다원화가 향후 에너지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