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개발은행(ADB)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1.9%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전망치보다 0.2%포인트(p) 높인 수치다. 그러나 이 전망에는 중동 갈등이 ‘1개월 이내’에 안정화된다는 낙관적 전제가 깔려 있어, 현실화 여부에 따라 수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DB는 4월 10일 발표한 ‘2026년 4월 아시아 경제전망’에서 반도체 수출 호조, 금리 인하에 따른 점진적 소비 증가, 반도체·국방·바이오 분야의 정부 지출 확대 기대 등을 상향 조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내년(2027년) 성장률도 1.9%로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추가경정예산 효과는 이번 전망에 반영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근거로 실제 성장률이 전망치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금리·재정, 성장 견인 ‘삼각 축’
이번 성장률 상향의 핵심 동인 중 하나는 반도체 업황 개선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량이 늘면서 수출 회복세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K-반도체 수출단가가 2025년 마이너스 15%에서 올해 플러스 전환하는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 인하 효과도 성장 전망에 반영됐다. 한국 기준금리는 2025년 12월 인하를 시작해 2.75%로 낮아진 상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락이 실수요 거래 회복으로 이어지며 소비심리 지수가 개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이미 8.2% 반등한 것으로 집계됐다.
‘1개월 안정화’ 가정…현실과의 괴리가 변수
시장에서는 ADB 전망의 핵심 전제인 ‘중동 갈등 1개월 안정화 시나리오’에 의문을 제기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4월 보고서에서 해당 시나리오가 실현될 확률을 20% 이하로 평가했다.
ADB 자체 리스크 분석에서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갈등이 3분기까지 이어질 경우 아시아·태평양 지역 성장률이 5.1%에서 4.7%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갈등 장기화 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한국 성장률이 1.2%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가 30달러 상승이 한국 GDP를 0.5~0.7%p 끌어내리는 구조적 영향을 미친다는 계산이다.
물가 전망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ADB는 올해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3%로 제시했다. 중동발 국제유가 상승, 원화 약세, 전자제품 가격 상승이 반영된 수치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와 연료 가격 상한제가 급격한 물가 변동을 억제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서울대 정진영 교수는 이러한 정책의 효과가 3개월 이내로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ADB서 ‘선진 아태국’으로 재분류…정책 자율성엔 과제
이번 전망부터 한국은 ADB 국가분류 체계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 아태국으로 변경됐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과 같은 분류군에 포함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따라 한국 경제전망이 세부 국가 단위 분석보다 글로벌 맥락에서 이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1.9% 성장률이 한국의 잠재성장률(2.7%) 대비 여전히 낮은 수치라며, 인구 감소와 투자 부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구조적 저성장 심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호황이 일시적일 경우 2027년 성장 동력이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