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LG에너지솔루션에 43억달러(약 6조4000억원)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를 발주했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부품 조달을 넘어, 테슬라가 전기차 회사에서 에너지·인프라 기업으로 전략 축을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업계는 해석한다.
이 계약은 2026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에너지 안보장관 포럼(IPEM)을 통해 공식 발표됐다. 총 560억달러 규모의 에너지·인프라 민간 투자 프로젝트의 핵심 사례로 포함됐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이번 딜을 탈중국(脫中國) 공급망 재편의 상징으로 공인한 셈이다.
中 CATL 대신 한국 LFP…공급망 지각변동
테슬라는 그동안 대형 ESS 제품인 메가팩(Megapack)에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배터리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부품·소재 배제 정책을 강화하면서 공급망 다변화가 불가피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중국산 배터리 수입이 사실상 금지된 미국에서 테슬라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 인정받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LFP는 가격이 저렴하고 화재 발생률이 낮아 대형 ESS에 적합하지만, 그동안 한국 업체가 이 분야에서 대규모 수주를 따낸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업계는 이번 계약을 한국 배터리 기업이 LFP 분야에서 확보한 사상 최대 규모 수주로 평가한다.
배터리 생산은 미시간주 랜싱 공장에서 이뤄진다. 원래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50:50 합작 시설이었으나, GM이 2024년 전기차 투자 축소 과정에서 지분을 매각하면서 LG 단독 운영 체제로 전환됐다. 현재 공장은 LFP 각형 배터리 생산 라인으로 이미 재정비를 마쳤으며, 2027년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에너지 사업 매출 27% 급증…자동차는 10% 감소
이번 계약의 배경에는 테슬라 자체의 사업 구조 변화가 있다. 2025년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27% 증가한 128억달러를 기록하며 전체 매출의 약 13%를 차지했다. 반면 자동차 사업 매출은 10% 감소하며 성장 둔화 조짐을 보였다.
테슬라는 가정용 파워월(Powerwall)과 대형 전력 저장 시스템 메가팩3(Megapack3)을 양 축으로 에너지 사업을 확대 중이다. AI 인프라 확산과 클라우드 서비스 성장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태양광·풍력 등 간헐적 재생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피크 시간대에 공급하는 ESS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평소 공급망 정보 공개에 극도로 보수적이어서 협력사와 강도 높은 비밀유지계약(NDA)을 맺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미국 정부 발표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이 공식 공급사로 인정된 것은, 그 자체로 LG의 배터리 기술력과 북미 생산 역량이 미국 정부 차원에서 공인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BYD·스타트업 추격…수익성 관리가 관건
다만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 BYD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ESS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으며, 철-공기 배터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들도 속속 진입하는 추세다. 한국 배터리 업체 입장에서는 기술력과 미국 현지 생산이라는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테슬라가 전기차 기업에서 에너지·인프라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의 이번 수주는 한국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성장 축을 보여주는 이정표다. 2027년 랜싱 공장 가동을 기점으로 북미 ESS 배터리 시장의 공급망 지형이 본격적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