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다음 달 베이징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에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러시아와 이란으로부터 사들이는 석유·가스를 끊고, 대신 미국산 에너지를 대거 구매하라는 것이다. 무역전쟁 휴전 연장을 논의할 미·중 정상회담의 최대 변수로 ‘에너지 카드’가 급부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최근 며칠간 전직 관료와 기업 임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협상 전략을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베선트 장관은 3월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중국 측 카운터파트인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이를 정식 의제로 제안할 계획이다.
이번 제안이 주목받는 건 타이밍이다. 미국의 대이란 공격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중국의 주요 원유 도입처인 이란을 겨냥한 압박이 동시에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중국의 미국 에너지 구매 확대를 언급한 바 있다.
대두·보잉·희토류까지…종합 패키지 협상
에너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미국산 대두 구매 확대, 보잉 항공기 도입 증대, 희토류 수출 통제 완화 등을 포괄하는 종합 협상안을 준비 중이다. 미국은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은 그간 러시아로부터 국제 시세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받아왔다. 제재 대상인 이란산 원유도 우회 경로를 통해 수입해왔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기 전까지는 베네수엘라산도 들여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입장에서 러시아산 할인 원유를 포기하고 미국산 정가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라며 “협상의 실질적 진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 합의 1년 연장 가능성…휴전 장기화되나
양국 정상은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무역전쟁 확전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세자릿수의 높은 관세율,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미국산 농산물 수입 중단,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등 일련의 조치가 유예됐다.
전문가들은 오는 4월 초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이 휴전 합의가 최대 1년 연장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베선트 장관이 2월 브라질에서 “현재 미·중 관계는 매우 편안한 위치에 있다”며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지만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지정학 3각 구도…러시아·이란 변수
이번 에너지 협상은 단순한 무역 거래를 넘어선다.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이란과의 에너지 관계를 끊도록 압박함으로써 두 나라에 대한 경제 제재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미국이 현재 이란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차단은 제재의 핵심 고리가 된다.
다만 글로벌 관세율이 3월 현재 10%에서 15%로 인상 예정인 상황에서 중국이 에너지 구매처 전환이라는 추가 부담을 얼마나 감수할지는 미지수다. 세무 전문가들은 “미국의 요구가 중국의 경제적 이익과 정면 충돌하는 영역”이라며 “4월 정상회담까지 양측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3월 중순 파리 회담은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가 처음 맞붙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미국 재무부 고위 실무진이 2월 초 중국을 방문해 소통 채널을 강화한 것도 본격 협상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