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 논의가 단순한 병력 숫자 게임을 넘어 구체적인 부대 유형과 전략적 우선순위를 가리는 단계로 진입했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 1월 23일 공개한 2026 국방전략(NDS)에서 “한국이 재래식 위협 방어를 주도하고 미국은 핵억제에 집중한다”는 역할 재조정을 명시한 지 불과 2주 만에, 워싱턴 전문가들이 감축 대상 1순위로 ‘중무장 육군부대’를 지목한 것이다.
스팀슨센터 켈리 그리코 선임연구원은 9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국 언론의 날’ 행사에서 “어떤 형태로든 병력 감축을 보게 될 것이며, 특히 중무장(heavy) 육군 부대가 먼저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런 신호는 분명히 있었다”며 이미 국방부 내부에서 구체적 검토가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자원을 집중하려는 전략적 재배치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전망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제도적 정책 조정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2025년 12월 발효된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은 주한미군을 2만8500명 미만으로 감축하는 데 예산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급격한 감축보다는 ‘선택적 재배치’ 방식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 양국도 2025년 11월 정상회담과 12월 핵협의그룹(NCG) 회의를 통해 역할 조정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육군 감축, 공군 증강? 국방부 내부도 의견 엇갈려
중무장 육군부대 감축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은 “대신 무엇을 채울 것인가”다. 일각에서는 한국 내 공군 기지 추가 설치를 통해 중국 견제를 위한 분산 작전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그리코 연구원은 “국방부 관계자들과 대화할 때 공군 관련해선 의견 차가 있다고 들었다”며 내부 합의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반대 입장은 두 가지 논리로 요약된다. 첫째, 한국이 대만 침공 같은 전시 상황에서 미군 기지 사용을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다. 둘째, 한국에서 일본이나 대만까지의 거리가 비슷한데 굳이 한국 기지가 필요한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육군을 빼는 대신 해·공군을 늘린다”는 단순 대체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2026 NDS의 핵심: 재래식 방어 부담 한국으로 이양
미국 국방부가 1월 공개한 34쪽 분량의 2026 NDS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전략을 명확히 드러냈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확장억제(핵우산)는 미국이 책임지되, 재래식 위협 방어는 한국이 주도하도록 역할을 재편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더 제한적인 수준의 지원 하에서도 한국이 충분한 억제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한다는 의미다.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을 비롯한 미 국방 당국자들은 지속적으로 “숫자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문제는 전시작전통제권(OPCON) 전환 없이 대규모 병력 조정이 가능한지 여부다. 국방 전문가들은 “OPCON 전환과 미군 감축이 연동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실행력이 변수…트럼프 1기 전철 가능성도
그리코 연구원은 “트럼프 1기 때도 주한미군 감축을 논의했으나 정책 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병력 수준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신중한 전망을 내놨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기 임기 중 주한미군 감축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국방부와 의회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현재 NDAA의 2만8500명 하한선 조항이 입법부 차원의 안전장치로 작동하고 있으며, 국방부 내부에서도 감축 방식과 대체 전력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2026 NDS에 역할 재조정이 명문화됐다는 점에서 1기 때보다는 정책 추진 동력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단순한 병력 숫자 조정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구조적 재편, 한국의 국방 자주성 강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재배치가 맞물린 복합 방정식이다. 중무장 육군부대가 1순위 감축 대상으로 지목된 지금, 한국 정부는 OPCON 전환 가속화와 독자 억제 능력 강화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전략적 기로에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