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다면 절차나 격을 따지지 않고 언제든 만난다.” 한중 외교 당국이 외교 격식을 뛰어넘는 파격 행보를 예고했다. 2026년 1분기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조현 외교부 장관이 중국을 다시 찾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통상 상대국 외교수장을 초청하는 것이 외교 관례지만, 한국이 먼저 중국행을 타진하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현재, 한중 관계는 숫자로도 증명되는 ‘실질적 개선’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격식 파괴한 실용 외교의 배경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노재헌 주중 대사는 지난주 베이징에서 왕이 외교부장에게 “적절하고 빠른 시기에 방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중국 측 사정이 여의치 않자 한국이 먼저 방중 카드를 꺼내 들었다. 2월 중순 춘절 연휴와 3월 초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정협) 일정 때문이다. 조현 장관은 지난해 9월 이미 중국을 방문한 바 있지만, 올해 1월 한중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를 위해서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조 장관은 지난달 20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1분기 장관급 회담을 열기로 했다”고 보고하며, 3월 말까지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 외교가에서는 “절차를 따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단순 수사가 아니라, 한중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정부의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한다. 격식보다 실리를 택한 셈이다.
600만 시대, 숫자로 본 한중 교류
외교 무대 뒤편에서는 더 극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다. 주중 한국대사관 발표에 따르면, 2026년 1월 베이징·톈진 지역 비자 발급 건수는 2만 226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급증했다. 전체 중국 공관 발급 건수는 12만 6904건으로 64% 늘었다. 특히 여행비자는 2만 1098건으로 84% 폭증하며, 코로나19 이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노재헌 대사는 “올해 한국을 방문할 중국인이 6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628만 명 수준을 회복하는 것으로, 2016년 피크였던 807만 명에는 못 미치지만 의미 있는 반등이다. 외교가는 이를 “한중 관계 개선과 중일 관계 악화의 반사이익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분석한다.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 대신 한국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관계 개선의 이면과 향후 과제
하지만 숫자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양국이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미국의 상호관세 압박, 한반도 안보 이슈, 사드 문제 등 민감한 의제들이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외교장관 회담이 단순 교류 재개 수준에 그칠지, 아니면 구체적 협력 의제를 도출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는 2016년 사드 갈등 이후 냉랭했던 한중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과정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당시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한국 기업과 관광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실질적 협력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격식을 넘어선 실용 외교가 결실을 맺으려면, 회담 이후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 600만 중국인 방한이라는 숫자가 단순 통계로 끝나지 않고, 양국 국민 간 진정한 이해와 신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중 관계의 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